[짬] 창립 30년 각당복지재단, 김옥라 명예이사장
김옥라 각당복지재단 명예이사장.
재단 세워 봉사자 1만2천명 배출
‘걸스카우트’ 만들어 간사장 15년 26년전 남편 잃고 웰다잉 모색
죽음준비 전문교육가도 배출
“사람은 살아온 것처럼 죽어” 김옥라 각당복지재단 명예이사장이 이 땅에서 처음 시작한 것이 많다. 걸스카우트를 처음 조직했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폐허로 황폐했던 1950~60년대에 ‘대한소녀단 걸스카우트’를 창단해 간사장을 15년간 맡았다. 한국 여성 가운데 처음 국제기구(세계감리교여성연합회) 수장으로 유엔에서 공식 활동한 여성 엔지오 활동가이다. 자원봉사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해 자원봉사자를 키웠고 잘 죽는 방법(웰다잉)을 공개적으로 처음 모색했다. 호스피스 봉사를 처음 시작했고, 다문화가정을 위한 다양한 봉사를 시작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의 각당복지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한복을 입고 컴퓨터를 다루고 있었다. 새해 첫날이라 한복을 입었다고 했다. 곱다. 아무리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주변에서 한 세기를 살아온 이를 만나기 쉽지 않다. 출근해 일하는 이를 보기는 더욱 어렵다. 지난해 한국의 100살 이상 인구는 3000명을 조금 웃돈다. 그가 1986년에 만든 각당복지재단은 한국 최초의 전문자원봉사자 양성기관으로 그동안 1만2천여명의 전문자원봉사자를 배출했다. 지난해 12월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당시의 숨기고픈 이야기이다. “자원봉사라는 용어를 공무원에게 설명하며 어렵게 ‘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를 만들고, 처음 생각한 대상자가 퇴직한 교수들이었어요. 고학력자 자원봉사자로 제격이었어요. 전국 주요 대학에 지난 3년간 은퇴한 교수 명단을 부탁했어요. 200여명의 은퇴 교수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어요. ‘이제 자원봉사자가 돼 사회에 기여하자고….’ 그런데 답변이 딱 한명에게만 왔어요. 그마저 정중한 거절이었어요. 낙향해서 참여가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실망을 넘어서 충격이었어요. 최고의 지식인들이 그리 자원봉사에 대해 무지하고 관심이 없는지.” 죽음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를 만든 인연도 각별하다. 평생을 함께했던 남편이 간경화로 26년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는 반년 이상 눈물로 지샜다고 한다. 그리고 죽음이 무엇이길래 이리 슬프고 애달파야 하는지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어느 날 눈을 감고 상념에 빠져들고 있을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소리가 들렸어요. ‘죽음을 탁상 위에 올려놓고 공론에 부치라’는 소리였어요.” 그는 배우자를 잃고 아파하던 지인들과 91년 4월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를 출범시켰다.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슬픔을 치유하자는 목적이었다. 죽음준비교육 전문가도 배출했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어요. 사람은 살아온 것처럼 죽어가요. 삶과 죽음 사이에 돌연변이는 없어요.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아름답게 죽을 수 있죠.” 건강 비결이 궁금했다. 하루 7시간 자고, 세끼 챙겨 먹는다. 간식은 안 한다. 40대와 50대에 심한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으로 고생했다. 업무 스트레스 탓이었다. 80대 초반 신장암에 걸렸다. 한쪽 콩팥을 떼어냈다. 그 후 특별한 질병에 시달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긍정적인 사고와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했다. “암에 걸렸을 때 남들은 슬퍼하고 울지만 저는 오히려 감사했어요. 암환자들의 고충을 깊이 이해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거죠. 수술 뒤 일주일 만에 퇴원했어요. 저보다 수술한 의사가 더 기뻐했어요.” 그의 긍정적인 사고는 일상에 묻어난다. “공기와 물 얼마나 고마워요. 지금까지 나를 있게 만든 부모와 가족, 친구들이 얼마나 고마워요. 마당에 핀 꽃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마치 어머니 자궁에 있을 때 바깥세상을 모르고 살았듯이, 죽어서도 지금은 모르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감사할 수밖에요.”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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