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정부복지 거부당한 ‘비수급 빈곤층’ 지자체서 위로받다

등록 2016-12-27 05:00수정 2016-12-27 10:04

[밥&법] 서울발 ‘시민복지기준’ 전국 10곳 확산

소식 끊긴 아들 있다고
성냥갑 같은 집 하나 있다고
수급자 못되는 빈곤노인들

2012년 서울시를 시작으로
광역 9곳·기초1곳
자체 복지기준 만들어 지원 나서

막막했던 생계에
아주 작은 햇살이 비친다
대구시 달서구에 사는 박아무개(75)씨 부부는 폐지를 모아 판다. 힘겹게 이곳저곳 다니지만 벌이는 고작 월 15만원 수준이다. 이마저도 일정하지 않았다. 부부에게 가장 큰 소득원은 정부의 기초연금 33만원이다. 이것저것 다 합해도 소득은 50여만원 수준으로 최저생계비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박씨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를 받지 못했다. 부양의무자인 아들과 딸이 부부에게 아무런 보탬을 주지 않지만 그들의 소득이 선정 기준을 초과한다는 이유에서다.

아파도 맘대로 병원조차 갈 수 없는 힘겨운 나날의 부부에게 최근 추가 소득이 생겼다. 대구시로부터 다달이 20만원가량의 ‘시민행복급여’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올해 7월 이른바 ‘대구시민복지기준’을 수립하면서 시민행복급여 대상자를 확대했는데 박씨 부부가 대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시민행복급여는 국가의 기초생활보장급여를 신청했으나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탈락한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대구시가 자체적으로 도입한 것으로, 대구형 기초생활보장제도인 ‘시민행복보장제도’에 딸린 생계급여를 가리킨다.

부산시 서구에 사는 김아무개(71)씨는 독거노인이다. 대구의 박씨 부부보다 형편이 더 열악하다. 김씨는 생계를 위해 근년까지도 식당 등지에서 청소하며 벌이를 했다. 하지만 류머티즘성 관절염에 퇴행성 관절염까지 겹쳐 더는 일을 할 수가 없게 됐다. 형제 등 피붙이가 있긴 하지만 그들 또한 형편이 딱한지라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막막한 김씨의 처지를 알게 된 동주민센터가 지난해 7월 정부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하도록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김씨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지 못했다. 소득과 재산, 자동차 등을 환산해 정하는 소득인정액이 집이 있다는 이유로 선정 기준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김씨의 숨통을 틔운 건 지난 10월 말부터 부산시에서 지급한 월 19만4천원이다. 부산시가 ‘부산형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시행하자 동주민센터가 김씨에게 이를 안내해 수급자로 선정되도록 한 것이다. 부산형 기초생활보장제도도 대구와 마찬가지로 중앙정부의 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지 못하는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비수급 빈곤층’에게 다달이 최저생계유지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지난해 10월 말부터 도입·시행됐다. 역시 ‘부산시민복지기준’에 딸린 대표사업 중 하나다.

대구의 박씨 부부, 부산의 김씨 할머니에게 ‘가뭄에 단비’ 구실을 한 ‘지역형 기초생활보장제도’는 2013년 서울시에서 처음으로 시작됐다. 바로 서울형 기초생활보장제도다. 서울시는 당시 정부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선정 기준과 생계급여 기준이 전국에 획일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물가와 생활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서울시민이 불이익을 받는 등의 문제가 많다면서 이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실상 서울시가 국가 차원의 국민복지기준과 다른, 서울시민의 생활 수준과 지역 특성을 반영한 지역 차원의 새로운 시민복지기준선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수립한 ‘서울시민복지기준’의 대표사업 중 하나였다.

서울발 복지기준 전국 시·도로 확산 서울시는 2012년 10월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서울시민복지기준’을 발표했다. 이 기준은 서울시민 누구나 누려야 할 복지의 기본수준을 뜻하는 것으로 서울 복지의 헌장이나 지침의 성격으로 마련됐다. 서울시는 이 기준에 따라 소득·주거·돌봄·건강·교육 등 5개 분야의 102개 사업(105개로 확대)을 시행했다. 서울형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그 가운데 이 기준의 취지를 가장 잘 반영했다는 중점사업 중 하나다. 서울시는 26일 “2015년 12월말 기준으로 서울형 기초생활보장 대상자가 1만3265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여기에 다른 복지지원으로 연계한 인원수까지 더하면 올 10월 현재 14만여명의 복지 대상자를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복지예산도 해마다 늘어 지난해의 경우 전체 예산의 33%인 7조7300억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시민복지기준 도입을 통해 복지 확대를 꾀한 서울시의 움직임은 전국 광역시·도에 ‘시민복지기준 도입 확산’으로 이어졌다. 대구시는 올해 7월 ‘대구시민복지기준’을 발표했다. 지난해 6월부터 1년간의 준비 끝에 마련한 이 기준은 향후 대구 복지정책의 가이드라인 기능을 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소득·주거·돌봄·건강·교육 등 5개 영역별로 최저기준과 적정기준을 지표화해 이를 보장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올해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5646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총 70개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대구형 기초생활급여인 시민행복급여의 확대도 그중 하나다. 가구소득이 중위 소득 30% 미만인 가구이면서 중앙정부의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못 받는 가구를 시민행복급여 지원 대상으로 선정해 2020년까지 그 대상자를 지난해의 두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부산시도 지난해 말 부산시민복지기준을 마련해 공표했는데 이 기준에 따라 부산시는 올해부터 2020년까지 소득·일자리·건강 등 9개 영역별로 부산형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포함해 부산형 최저주거기준 보장, 주민 주도 마을계획 수립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충청남도도 충남복지보건기준선을 설정하면서 분야별 관리지표와 성과지표를 마련해 현재 기준의 9개도 1위보다 약 20~30%씩 복지 수준을 상향하겠다고 목표를 내걸었다.

기초자치단체로는 완주군이 첫 시도 26일 <한겨레>가 17개 광역시·도 등 전국 지자체를 상대로 집계한 결과, 서울·대구·부산·충남 등 9곳의 광역자치단체에서 시민복지기준을 수립했거나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기초자치단체인 완주군도 시행안을 마련하고 정부와 세부사업 협의에 나선 것으로 확인돼 2012년 서울에서 닻을 올린 시민복지기준이 어느새 10곳의 광역 및 기초 지방정부로 퍼져 지역복지의 새로운 흐름을 일구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민복지기준을 수립해 이미 시행하고 있는 광역시·도는 서울을 비롯해 충남, 대전, 광주, 세종, 부산, 대구다. 경기도와 전남도 이를 도입하기 위해 각각 올해 10월과 12월에 도민 공청회를 열었다. 경기도는 특히 도내 격차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테면, 국민기초생활 보장 수급률의 경우 가평이 5.96%에 이르지만 용인은 단지 0.76%에 그치는 등 두 지역의 수급률 차이가 7.8배에 이른다. 이처럼 31개 시·군 간의 복지 격차가 극심한 경기도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복지사각지대 해소와 지역 간 균형발전을 함께 도모하겠다는 복안이다. 따라서 경기도는 시민복지기준이란 일반적 이름 대신에 ‘경기복지균형발전기준선’이라고 명명해 2017년 중에는 세부사업을 확정해 본격 시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주민복지기준을 마련한 완주군도 내년 7월 시행을 목표로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완주군청의 관계자는 “부양의무자 재산 기준을 완화해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완주군민들의 기초생활을 보장해주는 완주형 생활안전지원사업에 일단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와 의정부시 등도 내부적으로 시민복지기준을 검토했지만, 구체적인 도입 계획까지 나가지는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 서울시와 세종시의 시민복지기준 도입 등에 관여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김미곤 부원장은 “시민복지기준은 각 지자체 복지정책 방향의 등대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지자체의 노력만으로 실현되기는 어렵고 중앙정부의 복지예산 확대와 관련 법 및 제도 개선이 함께 수반되어야 실질적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

시민복지기준(선)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중앙정부의 국민복지기준(선)을 시·도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 지방정부 차원에서 적용한 개념이다. 1968년 일본 도쿄도에서 국가 단위에서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복지 수준을 지자체 차원에서 높여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약속한 데서 처음 시작됐다. 국내에선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1년 보궐선거에서 이를 공약으로 내건 뒤 이듬해 서울시민복지기준을 마련하면서 첫선을 보였다. 대체로 시민으로서 최소한 누려야 할 보장을 뜻하는 ‘최저기준’과 시민으로서 품위있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적정기준’으로 나뉘어 제시된다. 예컨대 최저생계비 이상의 소득 보장이 최저기준이라면, 중위소득의 50% 이상의 소득 보장이 적정기준이 되는 식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계엄군 총 잡은 안귀령 “막아야 한다, 다음은 없다 생각뿐” 1.

계엄군 총 잡은 안귀령 “막아야 한다, 다음은 없다 생각뿐”

“형이 707 선배거든, 명령받아 온 거 아는데…” 계엄군 ‘달랜’ 배우 2.

“형이 707 선배거든, 명령받아 온 거 아는데…” 계엄군 ‘달랜’ 배우

경찰청 ‘윤 내란죄’ 수사 착수…국수본 안보수사단 배당 3.

경찰청 ‘윤 내란죄’ 수사 착수…국수본 안보수사단 배당

들끓는 종교계 “윤, 국민에 공포감 일으켜” “무릎 꿇어 사죄하라” 4.

들끓는 종교계 “윤, 국민에 공포감 일으켜” “무릎 꿇어 사죄하라”

김문수 “연락 못받아 국무회의 불참…비상계엄, 뉴스 보고 알았다” 5.

김문수 “연락 못받아 국무회의 불참…비상계엄, 뉴스 보고 알았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