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청년연대 김식 공동대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혁명적 상황’에서 산타가 떠올랐다. ‘그것’은 산타가 주는 올해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됐다. 그래서 산타 옷을 준비했고, 아이들에게 줄 소박한 선물도 마련했다. 70명의 젊은 산타는 광장으로 나갔다. 촛불을 든 시민 사이를 누비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었다. 정치가 무엇인지, 탄핵과 퇴진, 하야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부모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온 아이들은 산타를 보며 환호했다. 산타들은 ‘그것’을 외쳤고, 시민들도 그랬다. 아이들도 덩달아 따라했다. 지난 17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8차 촛불집회가 열린 광화문 광장에서 ‘청년 산타 대작전’을 지휘한 김식(33·사)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는 “아이들은 물론 온 국민이 좋아할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산타에게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부모와 거리 나온 아이들 보며
“나쁜 대통령 뽑은 어른들 잘못”
살벌한 상황에도 ‘희망’ 주고파
청년산타 70명 선물 돌려 ‘환호’
24일 ‘청년 산타 대작전’ 준비중
1천명 자원·하야선물세트도 장만
청와대엔 수갑 선물도 할 예정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한국청년연대는 성남 청년회·광주 푸른청년회·청년 이그나이트 등 전국 50여개 지역 청년회가 연합해 지난 2009년 출범했다. 소외되고 힘들고 지친 청년들을 돕는 봉사와 문화 활동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했다. 그래서 청년 문제를 해결할 정책을 생산하고, 그것을 정치권에 제안하기 시작했다. 대통령·국회의원·지방의회 선거 때마다 청년 실업 등을 해결할 10대 과제를 선정해 제안하기도 했다. 초기부터 활동한 김씨는 지난 3월 총회에서 공동대표로 선출됐다.
지난 10월 중순부터 시작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대행진에는 청년들이 몰려 나왔다. 그동안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2030세대가 촛불을 밝히는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다. 김씨는 고민했다. “청년의 임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오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들에게 어릴 때부터 민주주의의 진정 한 맛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로 , 살벌한 구호 속에서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정치에 참여하는 의미를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훗날 자신들이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 했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산타였다. 마침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대통령 퇴진운동과 산타의 이미지가 합쳐져서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이벤트로 준비한 것이다. 청년 산타 대작전 계획을 알리자 각계에서 도움의 손길이 오기 시작했다. 5~6곳의 출판사에서는 아이들이 좋아할 그림책 400여권을 보내왔다. 한 개인 사업가는 이쁘고 따뜻한 털모자 100개를 보내왔다. 세월호 리본 공작소에선 리본 고리 100개를 제작해 보냈다. 동물 캐릭터가 있는 스티커도 준비했고, 추운 손을 덥힐 핫팩도 마련했다. 청년 산타를 자원한 젊은이들이 줄을 섰다. 젊은 산타들은 어린이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썼다. 이렇게 마련한 꾸러미는 ‘하야 선물 세트’라고 이름지었다.
산타로 변신한 청년들은 광화문 광장을 돌며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박근혜에게는 탄핵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개사한 캐롤도 불렀다.
김 대표는 고교시절에 교사를 꿈꾸었다. 암울한 시절이었다. 아이엠에프 위기로 경제가 침체하면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희망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대학에 진학해서 적극적인 학생 활동을 했다. 단과대 총학생회 회장도 했다. 대학 졸업 뒤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며 군 복무를 마친 뒤 사회운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이번주 토요일인 24일엔 대규모로 청년 산타 대작전을 할 계획이다. 청년 산타도 1천여명으로 늘어났다. 대형 모형 수갑도 여러 개 만들어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할 계획이다. 후원이 늘어 선물 꾸러미도 한층 풍성해질 참이다.
김 대표는 “청년들은 정치권에 대해 실망을 넘어서 혐오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당은 물론 야당도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요. 지난 총선 때 야당에 청년들은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지만 그들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데 그쳤어요. 언론 역시 제 구실을 못하고 있어요. 퇴진하지 않고 버티는 대통령은….”
1년 반 전에 결혼한 그는 아이가 한 명 있다. 자식에겐 멋진 한국을 물려 주고 싶다고 했다. “부모의 손을 잡고 광장에 나온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어요. ‘나쁜 대통령을 뽑은 어른들 때문에 왜 우리가 이런 개고생을 해야 해?’ 순간 난감해하던 부모의 표정이 떠오르네요.”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후원하고 싶은 이들의 연락도 기다린다. (02)834-5778.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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