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첫 준비기일 40분 진행
“어디서 어떤 업무 봤는지
대통령이 가장 잘 알 것
자료 있으면 제출하라” 요구
“어디서 어떤 업무 봤는지
대통령이 가장 잘 알 것
자료 있으면 제출하라” 요구
헌법재판소가 22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세월호 참사 당시 무엇을 했는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시각별로 공적, 사적 업무를 남김없이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주요 탄핵소추 사유인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한 박 대통령의 답변이 불명확하니 이를 분명하게 소명하라는 ‘석명권’을 재판부 직권으로 행사한 것이다. 또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 13가지를 5가지 유형으로 압축하는 등 탄핵심판 첫 공개 심리부터 공격적이고 신속한 심리 진행을 위한 길닦기에 들어갔다.
■ 신속하게 재판 진행할 듯 이날 변론 준비 절차는 오후 2시 국회 탄핵소추위원인 권성동 법제사법위원장과 소추위원 대리인 8명, 박 대통령의 대리인 7명이 착석한 가운데, 수명(受命)재판관인 이정미·강일원·이진성 재판관이 헌재 소심판정에 들어서며 시작됐다. 본격 변론 전에 복잡한 쟁점과 증거를 사전 정리하는 임무가 주어진 수명재판부는 변론 진행을 위한 법률적 교통정리는 이정미 재판관, 쟁점 정리는 강일원 재판관, 증거 정리는 이진성 재판관이 각각 맡는 역할 분담을 통해 40여분간의 첫 심리를 무난하게 이끌었다.
수명재판부는 우선 박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를 △최순실 등 비선조직에 의한 국정농단에 따른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 △대통령의 권한 남용 △언론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뇌물수수 등 각종 형사법 위반 등 5가지 유형으로 나눠 심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사건 주심인 강 재판관은 “유일한 선례인 2004헌나1 사건(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 때도 소추 사유를 개별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유형별로 판단했다”며 청구인(국회)과 피청구인(박 대통령) 쪽에 동의를 구했다. 국회는 박 대통령의 헌법 위반 5가지, 법률 위반 4가지(8개 혐의)를 들어 탄핵소추를 의결했다. 헌재가 이를 각각의 사안별이 아닌 유형별로 묶어 심리할 경우 하나의 증거나 사실관계로도 여러 건의 헌법과 법률 위반을 동시에 판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만큼 심리가 빨라질 수 있다.
일일이 피청구인 등의 의견을 들어가며 심리를 진행하는 변론주의와 함께, 당사자들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재판부 직권으로 증거 채택 등 심리를 강행하는 ‘직권주의’를 행사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강 재판관은 “국정공백을 우려해 신속한 심리를 해달라는 양쪽의 요구가 있다”며 “탄핵심판에서도 당사자주의와 변론주의가 기반돼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지만, 헌법재판의 특성상 상당 부분 직권주의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 대통령 쪽이 증거 조사 등을 요구하며 지연전술을 쓸 경우, 헌재 직권으로 이를 중단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대통령 본인이 세월호 7시간 제일 잘 알아” 이진성 재판관은 “탄핵소추 사유인 국민의 생명권 보장에 관해,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행적이 현재까지 밝혀진 게 많지 않다”며 세월호 7시간 의혹을 꺼내들었다. 이어 “세월호 참사가 2년 이상 경과했지만 그날은 워낙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날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할 수 있을 정도다. 피청구인(박근혜 대통령)도 그런 기억이 남다를 것이다. 문제가 되는 7시간 동안 피청구인이 청와대 어느 곳에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보았는지, 어떤 보고를 언제 받았고, 어떤 대응 지시를 했는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남김없이 밝혀주시고 자료가 있으면 제출해 달라”고 박 대통령의 대리인단에 요구했다. 이에 박 대통령 쪽 이중환 변호사는 심리가 끝난 뒤 브리핑에서 “(대통령에게 직접) 물어보고 확인하겠다”고 했다.
강 재판관 역시 박 대통령이 지난 10월25일 대국민 담화에서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되기 전까지 최순실의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한 사실을 거론하며 “비선조직과 관련돼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무엇을 도움받았는지가 불분명하다.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것이 언제인지, 어디까지 도움을 받은 것인지 추후에 답변해 달라”고 박 대통령 쪽에 요구했다.
■ 최순실 등 증인 채택 이날 심리에서는 소추위원단과 박 대통령 쪽 모두 증인으로 신청한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 3명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헌법재판소법은 증인으로 소환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때 증인으로 나왔으나 증언을 거부한 최도술씨처럼 최순실씨가 특별한 증언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헌재는 소추위원단이 신청한 최순실씨 등의 검찰 공소장과 언론보도 등 49건, 박 대통령 쪽이 신청한 ‘대통령 말씀’ 등 3건을 모두 증거로 채택했다. 앞서 박 대통령 쪽은 검찰 공소장에 대해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검사 의견을 적은 것에 불과하다”고 했고, 언론보도는 “무분별한 폭로성 의혹 제기”로 일축한 바 있다.
헌재는 또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헌재가 검찰과 특별검사에게 수사기록을 요청한 것은 위법하다”며 제기한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국회 소추위원단의 신청은 받아들여 검찰 등에 최씨 등의 수사기록 인증등본(정본임이 인정된 수사기록 사본)을 요청하고, 수사자료를 끝내 못 받으면 주심 재판관이 직접 검찰 등에 가서 조사하는 서증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진성 재판관은 “최순실 사건 변호인들이 이미 수사기록을 확보했다는 언론보도가 있다. 이미 수사기록이 시중에 나온 상황이라면 검찰에 정중하고 강력하게 수사기록을 보내줄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한편, 헌재는 앞으로 국회가 탄핵심판 관련 서류를 공개하는 것은 제한하겠다고 했다. 앞서 국회 소추위원단이 “아무 잘못이 없다”는 박 대통령의 헌재 답변서를 공개하자 박 대통령 쪽은 반발했다. 이정미 재판관은 “형사소송법은 공판 개정 전 비공개하는 원칙이 있고, 청구인이 피청구인의 서류를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이날 준비 절차를 지켜본 헌법 전문가들은 “피청구인들이 증거 채택 등에서 허를 찔린 거 같다”고 했다. 2차 준비 절차는 오는 27일 오후 2시에 열린다.
김남일 김민경 현소은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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