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으로 점철된 탄핵 답변서
현대차에 계약 압박해놓고
“중기 애로듣고 안타까워 지시”
세월호 7시간 행적 의혹엔
“모든 인명사건에 대통령 책임지나”
현대차에 계약 압박해놓고
“중기 애로듣고 안타까워 지시”
세월호 7시간 행적 의혹엔
“모든 인명사건에 대통령 책임지나”
박근혜 대통령이 법률대리인단을 통해 헌법재판소에 낸 탄핵심판 답변서 내용은 법률 전문가들은 물론, 국민의 상식과 법 감정에 비춰 봐도 무리한 주장이 많다. ‘궤변’ 수준의 일부 주장에 헌법 전문가들은 “1970년대식 헌법 해석을 하고 있다”, “대리인들이 일을 참 쉽게 한다”고 비판했다.
“오히려 최순실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박 대통령이) 절대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18일 공개된 답변서 내용 중 단연 압권은 지난 4년간 ‘박근혜-최순실 공동정부’였다는 검찰 수사 결과를 반박하는 이 문장이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답변서에서 최순실씨가 딸 정유라씨의 동창 학부모가 운영하는 ‘케이디코퍼레이션’이 현대차에 10억원대의 납품을 성사시키는 과정에 박 대통령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앞서 검찰은 최씨로부터 케이디코퍼레이션 회사 소개 자료를 여러 차례 넘겨받은 박 대통령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지시해 현대차가 울며 겨자 먹기로 납품을 받도록 한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하지만 대리인단은 ‘회사 소개 자료’ 얘기는 쏙 뺀 채 “대통령은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을 들으면 안타까워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주라는 지시를 해왔다”, “여러 경로를 통해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것은 동서고금 정치에서 널리 인정돼왔다”는 주장을 폈다.
A4 용지 25쪽 분량의 답변서를 보면, 왜 박 대통령이 중요한 의견을 듣는 민간 통로가 ‘최순실’ 한명뿐인지에 대한 의구심만 더욱 커진다. 대리인단은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한 것을 두고는 “직업관료나 언론인 기준으로 작성된 문구들을 국민들이 보다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일부 표현에 관해 주변 의견을 청취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최순실 라인’의 추천으로 임명된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해서는 “엄격한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됐다”며, 오히려 ‘뭐가 문제냐’며 적반하장식 주장을 펴기도 했다.
대리인단은 박 대통령과 최씨의 사이를 ‘친족 관계’ 수준으로 엮어놓는 주장도 했다. 이들은 “대통령이 최씨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최순실의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대통령의 헌법상 책임으로 구성한 것은 헌법상 연좌제 금지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했다. 연좌제 금지를 담은 헌법 제13조는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할 국가적 재난과 일상적 사건·사고를 같은 수준에 놓는, ‘세월호 참사=교통사고’라는 식의 주장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대리인단은 박 대통령이 아무 조처도 하지 않았다는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해 “그런 논리라면 앞으로 모든 인명 피해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생명권을 침해했다는 결론을 초래한다”는 궤변을 폈다. 또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 당시 청와대에서 정상근무하면서… 피해자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하였다”며 “생명권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였다는 점에 대한 객관적 증거가 충분히 있다”고 주장했다.
대리인단은 이와 함께 비선실세인 최순실씨의 잘못을 박 대통령에게 물을 수 없다며 “그런 논리라면 측근 비리가 발생한 역대 정권 대통령은 모두 탄핵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위세를 업은 과거 정권의 측근 비리와 ‘공동정부’ 수준의 최순실 국정농단을 뒤섞어버린 것이다.
검찰 수사에 대한 자의적 해석도 ‘도를 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리인단은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해도 뇌물을 입증할 수 없어 안종범 전 수석 등에게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았다”며 탄핵소추 사유에 뇌물죄를 포함시킨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를 거부하면서 검찰의 뇌물죄 수사를 가로막은 것은 정작 박 대통령 자신이었다.
박 대통령 쪽은 검찰 수사를 거부한 ‘명분’을 궁색하게도 검찰의 편파 수사에서 찾았다. 대리인단은 “검찰 수사의 편향성을 문제 삼아 ‘정치적 탄압’ 운운하면서 출석에 불응하거나, 심지어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황에서도 당사에서 농성하며 검찰을 규탄한 사례가 있다”고 했다.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야권이 처했던 현실을 끌어다가 자신의 방어 논리로 앞세운 셈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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