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쪽이 헌재 답변서에서 검찰 수사를 전면 부정하고 나선 것은 탄핵심판을 형사재판처럼 몰아가려는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탄핵심판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행위가 파면 사유가 되는지를 따져보는 헌법재판인데도 심리지연을 위해 재판 기간이 상대적으로 오래 걸리는 형사재판 전략을 사용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국회가 18일 공개한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사건 답변서를 보면 박 대통령 쪽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 등 확실한 물증으로 뒷받침되는 검찰 수사 결과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정 전 비서관의 공소장을 보면, 그는 2013년 1월부터 2016년 4월까지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드레스덴 연설문, 국가정보원장·감사원장·검찰총장 인선 발표안 등 공무상 비밀문서 47건을 이메일이나 인편으로 최순실씨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대리인단은 “국정 수행 과정에서 지인의 의견을 들어 일부 반영했다고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일이고 국민을 대신해 최종 의사 결정권자로서 대통령의 역할을 수행했다”며 “유출 경로를 알지 못하고, 발표 1~2일 전에 지인의 의견을 들어본 것이어서 누설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의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출연, 롯데에 케이스포츠재단 75억 추가 출연 등 두 재단 관련 기금 지원 요구나 케이디(KD)코퍼레이션과 현대차의 납품 계약 강요 등 최씨에게 특혜를 제공한 혐의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 쪽은 “공익사업”, “정당한 직무 수행”, “중소기업 애로사항 해결”, “자발적 출연” 등이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씨 등의 공소장에는 “대통령과 공모하여 대통령의 직권을 남용해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가 금원을 출연하도록 함으로써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대부분 17권·510쪽에 달하는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수첩에 상세히 적혀 있는 내용이다.
헌법학자들은 박 대통령 쪽이 “뇌물죄 등에 대한 증거들은 공범 최씨 등에 대한 1심 형사재판절차에서 충분한 심리를 거친 후에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탄핵심판의 본질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리인단이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을 혼동해 엉성하고 불합리한 답변을 냈다”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대통령의 형사재판은 별도로 진행되는 것인데 형사재판처럼 모두 다 다투자는 것은 시간을 끌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박 대통령의 답변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씨의 국정농단이 설사 1%밖에 안 됐다 하더라도 그것이 중대한 헌법과 법률 위배 사항이라면 탄핵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민경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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