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반대도 찬성도 할 수 없는 처지
‘의견 없음’으로 회신 안 할 가능성도
‘의견 없음’으로 회신 안 할 가능성도
법무부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청구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의견서’ 회신 요청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수사 지휘를 하는 검찰에서 박 대통령을 ‘공범’으로 보고 최순실씨 등을 기소한 마당에 반대 의견을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부의 법률 대리인격인 법무부가 찬성 의견을 적극적으로 펴기도 곤란하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의견 없음”을 내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지만, 이 역시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헌재는 지난 12일, 국회와 법무부에 일주일 말미를 주고 탄핵 관련 의견서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헌법재판소법은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기관, 공공단체, 법무부 장관은 심판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는 헌법소원이나 위헌법률심판 등 법집행 또는 법률이 심판 대상인 사건에서 정부 쪽 당사자에 해당한다. 반면 이번 탄핵심판에서는 그 대상과 당사자는 박 대통령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14일 “의견서를 쓸지 안쓸지, 쓰면 어떤 내용으로 쓸지 검토하고 있다. 선례 등을 두루 참고하고 있는데 일주일을 넘길 수도 있다”고 했다. ‘선례’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이 유일하다. 당시 법무부는 강금실 장관 주도로 100여쪽에 이르는 탄핵 반대 의견서를 썼다. “탄핵소추 사유의 구체적, 개별적 사실관계를 확인하거나 조사해 주장하는 것은 법무부 소관이 아니다”라며 ‘실체적 요건’인 선거법 위반의 부당성은 비교적 간략하게 정리하고, 대신 헌법적·법률적 평가에 중점을 뒀다. 법무부 또다른 관계자는 “검찰에서 탄핵소추 사유 중 일부를 기소해서 재판이 진행중인데, 법무부가 의견서를 통해 이에 대한 유·무죄 여부를 설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2004년 탄핵 반대 의견서 작성에 관여했던 한 법조계 인사는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법무부가 의견서를 내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때는 탄핵 사유가 분명히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누가봐도 탄핵 사유다. 법무부의 ‘의견 없음’은 탄핵에 대한 암묵적 찬성이 된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선거중립의무 위반 경고로 탄핵 빌미를 제공했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04년 헌재의 의견서 요청에 “법적 근거가 없다”며 “의견 없음” 회신문을 보낸 바 있다.
반면 검찰 고위 관계자는 “큰 틀에서 검찰 수사와 기소를 지휘한 법무부가 의견을 내지 않는 것은 국가기관의 직무유기다. 정 어렵다면 공소장에 포함되지 않은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에 대한 법률적 의견이라도 반드시 내야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헌재는 이날 탄핵심판의 준비절차 회부를 결정하고,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과 이정미·이진성 재판관을 준비절차를 주재할 수명재판관으로 지정했다. 헌재는 박근혜 대통령과 국회에 준비절차 기일 지정에 대한 의견을 오는 19일까지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탄핵심판의 쟁점과 증거를 정리하는 준비절차는 이르면 다음주께 열릴 예정이다. 김남일 김민경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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