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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통령마저 가짜인 ‘대리사회’…광장에서 온전한 나를 찾다”

등록 2016-12-13 20:16수정 2016-12-13 20:21

[짬] 대리기사 경험 책 펴낸 김민섭씨

대리기사 경험 책 펴낸 김민섭씨
대리기사 경험 책 펴낸 김민섭씨
문득 ‘대리 운전’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술자리에서 친구들이 “대리운전이나 할까”라고 말했다. 검색창에 ‘대리 운전’을 쳤다. 막 대리운전 사업을 시작한 회사에서 기사를 모집하고 있었다. 운명처럼 느껴졌다. 대학 강사를 하다 알바를 처음 할 때도 그랬다. 첫 아이를 낳은 아내를 병원에 두고, 생활비 걱정에 정처없이 걷다가 ‘4대보험 보장’이라는 햄버거 가게 구인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교수님’으로 불리웠지만 대학 강사에게 ‘4대보험’은 남의 이야기였다. 강사는 교수를 대신하는 값싼 ‘대리 인생’이었다. 강의를 대신했듯, 운전도 대신했다. 그에게 한국은 ‘대리 사회의 괴물’이다. 심지어 대통령도 ‘대리 대통령’이었다. 그는 궁금했다. ‘온전한 나’는 어디 있을까?

김민섭(33)씨가 대리운전을 하며 느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의 본질을 짚어본 <대리사회>(와이즈베리)를 최근 펴냈다. 그는 지난해 대학 내 노동의 부조리를 비판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써 화제를 모았다. 지난 12일 그가 대리운전 거점으로 삼고 있는 서울 합정동에서 김씨를 만났다.

지난해 ‘나는 시간강사다’로 화제
강사 접고 햄버거 가게서 ‘알바’
지난 6개월 수도권서 대리운전
“영혼까지 통제 ‘을의 노동’ 실감”

주말마다 광화문 촛불광장 참가
“대리인생 강요하는 ‘괴물’ 맞서야”

그는 지난 6개월동안 원주와 파주, 서울에서 대리운전을 했다. “한 밤중에 술 취한 손님을 대신해 운전하면 무섭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가끔 폭언을 하는 손님을 만나거나, 무시를 당하긴 하지만 무섭진 않아요. 그런데 정말 무서운 손님을 만난 적 있어요.” 그 손님은 웃으면서 이야기 했단다. “제 차가 오래 돼서 브레이크가 잘 안 잡힙니다. 하하하.” 그는 속으로 농담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였다. 브레이크가 잘 작동하지 않았다. 아주 힘껏 밟아야 간신히 섰다. 앞차와 충돌할 뻔 했다. 화를 내고 당장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저 이거 진짜…안 먹는군요”라고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손님은 느긋했다. “네, 좀 미리 세게 밟으면 됩니다.” 대리 기사를 두세 군데 한꺼번에 불러 제일 빨리 오는 기사와 휙 가버리는 취객들에겐 모욕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하루 7만~12만원을 벌었다. 시간강사 때보다 많은 수입이다. 하지만 대리기사를 하면서 ‘대리의 시간을 몸의 언어로 확인’했다. “대리기사는 세가지 통제를 받아요. 우선 행동의 통제입니다. 운전에 필요치 않은 행위는 못해요.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고, 깜박이를 켜는 간단한 조작외에는 남의 차이니까 좌석 조절도 못해요. 말도 통제 받아요. 손님이 먼저 말을 걸기 전엔 침묵하고 운전만 합니다. 또 사유의 통제도 받아요. 손님이 뭐라고 하든 ‘네, 맞습니다”라고 영혼없는 대답만 하면 됩니다.”

‘타인의 운전석’은 한 개인의 주체성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검열하는 ‘을의 공간’이었다. 대학에서도 그랬다. 4개월짜리 계약직 노동자이면서, 정규직 교수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 착각에 익숙해지며 ‘가짜 주인’이 됐다. 그는 결혼을 앞두고 대출을 받으러 간 은행에서 ‘재직증명서’를 요구받았다. 대학에서는 그에게 ‘재직증명서’ 대상이 아니라며 ‘강의 경력증명서’를 발급해주었다. 은행 담당자는 이게 뭐냐며 웃었다. 눈물을 겨우 참았다. 그는 ‘노동자’ 증명조차 할 수 없었다. ‘대리 인간’일 뿐이었다. 결국 이자가 비싼 제2금융권 신세를 져야 했다.

외국계 햄버거 가게는 차리리 인간적이었다. 노동자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아이 돌 때 5만원의 경조비를 주었고, 명절 때 머그컵을 선물했다. 1년3개월 근무하고 그만둘 때 50만원의 ‘퇴직금’도 즉시 주었다. 대학에서 4년간의 시간강사 생활을 그만 둘 때는 책상에 있던 짐을 빼는 것이 전부였다.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 주방만도 못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도 화장실에 책을 갖고 들어가 다 읽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어요.” 중학교 때부터 인터넷에 판타지 소설을 써서 연재했다. 고교 시절엔 고교생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한 <우리시대가 찾아낸 작은 영웅 이야기>를 출판사 권유로 내기도 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시간 강사가 됐다.

“타인의 운전석과 다름없는 ‘을의 공간’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해요. 누구도 타인을 주체로 일으켜 세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아요. 경쟁에서 승리하고, 오로지 혼자만 주체가 되길 주문받아 왔어요. 의사 결정권자는 언제나 자유롭게 회의 안건을 내고 소통하자고 하지만 화합하기 쉽지 않아요. 이미 상상과 수용 가능한 범위가 재한돼 있음을 누구나 알기 때문이죠. 그렇게 우리는 ‘을의 공간’에 익숙해집니다. 국가는 순응하는 몸을 지닌 국민을 만들어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요. 이들을 감시하고 격리해가면서 자신들의 욕망을 대리할 ‘대리 국민’을 양산해 내죠.”

지난 몇주동안 그는 주말마다 대리운전을 접고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광장의 모인 백만명의 개인이 모두 나름대로의 ‘주체적인’ 광장이었어요. 박근혜 대통령은 타인의 언어와 행동, 사유를 대신한 ‘대리 대통령’이었어요. 그런 대리 대통령의 천박한 욕망을 대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주체적인 국민이 퇴진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는 앞으로도 대리운전을 계속하면서 개인을 대리인간으로 만드는 대리사회라는 괴물의 구체적인 무기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 무기는 바로 ‘언어’입니다. 거리에 둥둥 떠다니는 언어요.”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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