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7월24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 간담회에 관련 동영상을 본 후 환하게 웃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이날 대기업 총수 7명을 독대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청와대사진기자단
6일 국회에서 열리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정몽구(현대차)·최태원(에스케이)·구본무(엘지)·신동빈(롯데)·김승연(한화)·조양호(한진)·손경식(씨제이) 회장 등 박 대통령과 개별 면담을 한 것으로 알려진 8대 대기업의 총수들이 증인으로 출석합니다. 지난해 7월과 올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 8대 재벌 총수를 만나 ‘문화산업 활성화’ 지원을 당부했다고 하는데요. 5일 <한겨레>는 재벌 총수들이 박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사업 관련 민원을 전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대통령과 재벌 총수가 각자 원하는 것을 주고받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과거 독재정권은 권력을 유지할 자금 융통이 쉽도록 일방적으로 재벌을 키웠고, 재벌은 이러한 정권에 돈을 내는 방식으로 국민들에게 모두 돌아가야 마땅한 일정한 이득을 거머쥐었습니다. 국회에 출석하는 총수들의 아버지·할아버지대 이야기인데요. 1981년부터 한화그룹을 이끌어온 김승연 회장의 경우엔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 대통령 접견실을 찾아 70억원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대통령과 재벌 총수의 결탁, 그 청산되지 못한 흑역사를 짚어 보았습니다.
1988년 12월14일 국회에서 열린 ‘일해재단 비리 청문회’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장세동 전 청와대 경호실장,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왼쪽부터)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1989년 김기춘 ‘일해재단’에 면죄부
정경유착의 실체가 시민들 눈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민주화 이후인 1988년입니다. 그해 4월 총선에서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전체 299석 가운데 절반에 크게 못미치는 125석만 차지하는 참패를 당합니다. 두달 뒤, 국회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청문회’ 가 도입됐는데요. 헌정 사상 첫 청문회는 전두환의 제5공화국 정권 비리를 규명하기 위해 열렸습니다. 미르·케이(K)재단의 닮은 꼴인 ‘일해재단(현 세종연구소)’에 이목이 집중된 것도 당시 청문회를 통해서였습니다. 일해재단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3년10월 버마 아웅산 폭발사고 유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려던 공익법인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데요. 1984년3월~1987년12월까지 재벌 등으로부터 목표액 3백억원보다 2배 가까운 598억5천만원의 기금을 모았습니다. 1988년11월 국회 5공비리조사 특위의 일해재단 청문회 증인으로 나온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은 일해재단 기금 조성에 강제성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웅산 참사 직후 유족들을 위한 성금 23억원은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냈고 84년도 1차 기부금 137억원은 이치가 맞아 협력했다. 그러나 85년 이후 기부금은 내라고 하니까 내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해 냈다.”(<한겨레> 1988년 11월10일자)
전두환 정권의 비리 의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높아지자, 검찰총장 직속으로 5공비리 특별수사부가 설치돼 수사에 돌입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뜻밖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당시 검찰총장은 바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습니다. 1988년 김기춘 신임 검찰총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전두환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긋습니다.
“국가 원수의 정치행위는 사법적 처리대상이 아니라 국민의 정치적 심판 대상일 뿐이다.” (<한겨레> 1988년 12월14일자)
1989년 1월, 검찰은 5공 비리 수사결과를 발표했는데요. ‘졸속·부실’ 수사라는 비판이 거셌습니다. 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재단을 설립했음에도, 기업들의 기금 출연을 강요한 사실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돈을 낸 기업에 특혜를 주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관련기사: [한겨레] 미르재단 수사도 ‘일해재단’ 꼴 날까
<한겨레> 1997년 4월18일자 1면. 김영삼 정부시절 불거진 두 전직 대통령의 부정축재는 한국의 정경유착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건 중 하나다.
■ 노태우 뇌물 받고, 재벌은 이권 청탁
정경유착에 대한 사법적 처벌이 이루어진 건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이후입니다. 5공 비리를 묵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임 중 범죄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됐습니다. 1995년 11월 당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재벌 총수 등 35명의 기업 대표로부터 2838억96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로 구속합니다.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나가는 흔치 않은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지요. 검찰은 이들 가운데 당시 재계 1위 삼성그룹 이건희,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등 재벌 총수 8명을 뇌물을 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공여)로 기소합니다. 뇌물을 건넨 모든 재계 인사가 기소된 건 아닌데요. 이에 대해 검찰은 “뇌물과 특정 사업 사이에 대가 성격이 있거나 특혜성 사업을 받은 기업 관계자는 기소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국민 경제와 대외 경쟁력에 미치는 부작용, 해당 업체 종사자와 가족들의 생활안정 등을 참작해 불입건했다”고 했습니다.
뇌물을 주고 받은 혐의로 법정에 선 재벌 총수들과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선 유죄가 확정됩니다. 법원은 동아 최원석 회장에 징역 2년6월, 대우 김우중·진로 장진호 회장·한보 정태수 총회장에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합니다. 이건희 회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동부 김준기 회장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대림 이준용·대호건설 이건 회장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권력형 부정 축재사건에 대한 1심 판결문을 보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청와대 접견실·집무실,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비롯해 삼성 이건희·럭키금성(엘지) 구자경·롯데 신격호·한진 조중훈·효성 조석래·금호 박성용·선경(에스케이) 최종현·코오롱 이동찬·두산 박용곤·미원(대상) 임창욱·해태 박건배·태평양(아모레퍼시픽) 서성환 회장 등을 만나 직접 돈을 받았습니다. 1988년 3월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경제 정책, 금융·세제 등과 관련해 경쟁 기업보다 우대를 받거나 불이익이 없도록 선처해 달라는 취지로 20억원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92년까지 청와대 접견실에서 삼성 계열사 사장을 8차례 만나면서 삼성으로부터 총 250억원의 뇌물을 받습니다.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도 비슷한 취지로 1988년~1991년 6차례에 걸쳐 250억원의 뇌물을 건넸습니다. 동아 최원석 회장도 6차례 노 전 대통령을 만나 진해 잠수함기지 건설, 아산만 해군기지 건설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등의 취지로 모두 230억원을 주었습니다.
1997년 대법원은 노태우 비자금 상고심에서 재벌 총수들이 정치자금 명목으로 건넸다고 주장한 돈의 성격을 ‘뇌물’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정치자금 ·선거자금·성금 등의 명목으로 이루어진 금품 수수라 하더라도 정치인인 공무원(대통령)의 직무행위에 대한 대가로서 실체를 갖는 한 뇌물”이라고 판시했습니다.
■ 전두환 재임 중 기업서 거둔 돈 9500억원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재벌 총수를 직접 만나 뇌물을 챙긴 건, 5공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96년 1월 검찰은 전두환 비자금 수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전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기업들로부터 받은 돈은 무려 9500억원에 달했습니다. 검찰은 9500억원 가운데 2259억5천만원을 세무조사 무마·국책사업자 선정 등 각종 이권을 청탁하기 위한 ‘뇌물’로 판단했습니다.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권력형 부정 축재사건에 대한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전두환은 1982년~1987년까지
‘청와대 혹은 인근 안가’에서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을 7차례 만나 원자력발전소 건설공사 등 대형 국책사업자 선정·금융 및 세제 운용과 관련해 다른 기업보다 우대하거나 불이익 없도록 선처해 달라는 취지로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으로부터 220억원을 받았습니다. 1983년부터 1987년까지 청와대를 8차례나 찾은 삼성 이병철 회장도 220억원을 건넸고요. 한진 조중훈 회장은 1980년~1987년 항공운송사업에 대한 규제 등 기업 경영에 불이익이 없도록 해달라거나 세무조사 완화를 청탁하는 취지로 160억원을 냈습니다. 선경 최종현·롯데 신격호 회장 150억원, 럭키금성(엘지) 구자경 회장 100억원, 한국화약(한화) 김승연·금호 박성용 회장이 각각 70억원의 뇌물을 주었습니다. 전두환에게 뇌물을 준 재벌 총수들은 기소되지 않았는데요. 공소시효(5년)이 지났다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검찰은 재벌 총수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청사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조사합니다.
■ ‘경제 살리자’ 특별사면 된 재벌총수들
1997년 대법원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추징금 2205억원, 2628억원을 선고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확정판결 13년 만인 2013년에서야 추징금을 완납합니다. 전 전 대통령은 아직도 약 1천억원의 추징금 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에게 뇌물을 준 사유로 처벌을 받은 재벌 총수는 노태우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8명 뿐입니다. 이들 가운데 7명은 대법원 확정판결 여섯달 만에 ‘특별사면·복권’ 됩니다. 김영삼 정부는 1997년 개천절 특별사면자 명단에 뇌물공여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이건희·김우중 회장 등 7명을 포함시켰는데요. 명분은 역시나 ‘경제살리기’ 였습니다.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놓고, 활동에 어려움을 겪은 재벌 총수들에 대한 사기진작 차원이라는 겁니다. 전직 대통령에 뇌물을 준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나 비자금을 관리해 준 금융기관 특검 등 재발 방지를 위한 조처들도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재벌 총수들을 사면한 지 두달 만인 1997년12월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국민 대화합'을 이유로 전직 대통령를 비롯해 12·12 및 5·18 사건 관련자들을 특별사면합니다. 앞서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는데요. 외환위기의 단초는 재벌의 잇따른 도산이었습니다. 국내·외에서 재벌 개혁이 필요하단 요구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이명박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총수 마음대로’ 경영이 아닌, 투명·전문 경영을 자리잡게 할 재벌 개혁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청산되지 않은 채 우리 사회를 배회하던 정경유착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0년전인 1996년 1월 노태우 비자금 공판에서 검찰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대통령과 이를 이용하고 싶어하는 기업주가 비공식적으로 은밀하게 만난 것이 이 사건 범행 장소가 된 개별면담 자리였습니다. 기업현황·정책건의 등에 관한 의견을 직접 청취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제로는 특정 사업 수주나 신규사업 인·허가 특혜를 바라거나 포괄적으로 기업운영 전반을 선처해 달라는 취지로 금품을 주고 받는 계기가 되어왔던 것입니다. “기업하는 사람이 돈이 남아돌아 그렇게 많은 돈을 대통령에게 갖다 줄리가 있겠습니까. 대통령과 독대했다는 소문만 나도 관련 부처에서 알아서 모시기 때문입니다” 라는 어느 피고인 고백이 바로 이 사건의 진실 그 자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겨레> 1996년 1월 30일자)
아직 박근혜 대통령 등에 대해선 뇌물 혐의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정경유착의 깊고 넓은 뿌리를 통째로 뽑는데 실패한 우리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관련기사: [한겨레] 30년 전 재벌 1세가 출연, ‘박근혜·최순실’엔 2세가 출연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