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가 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박근혜 게이트’를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가 2일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기금의 본질이 무엇인지 원점에서 보겠다. 기업 모금을 강제한 대통령의 힘이 무엇이었는지 봐야한다”고 밝혔다. 두 재단의 강제 모금액 774억원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박 특검은 이날 특별검사보 후보자 8명을 청와대에 추천했다.
박 특검은 이날 취재진과의 간담회에서 “재단 기금의 본질을 직권남용 등으로 보는 건 구멍이 많은 것 같다. 다른 쪽으로 우회하는 것보다는 때론 직접 들어가는 게 좋을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대통령은) ‘문화융성’이라는 명분으로 (기금 모금에 대해) 통치행위를 내세울텐데, 그걸 어떻게 깨느냐가 (특검 수사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세 차례 대국민담화와 변호인 등을 통해 자신의 무고함을 강변하며, 재벌 총수들을 만나 재단 기금을 출연하도록 한 것은 “정당한 국정 수행”이자 “기업들의 자발적 기부”라고 주장했다. 박 특검의 발언은 ‘재단 설립=국정 수행’ 주장 이면의 ‘대가 관계’를 파헤쳐 제3자 뇌물제공 등의 혐의를 적극적으로 판단해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박 특검은 “대기업들이 거액의 돈을 내게 된 과정이 무엇인지, 거기에 대통령의 역할이 작용한 게 아닌지, 즉 근저에 있는 대통령의 힘이 무엇이었는지를 봐야한다”고 했다. 검찰 재직 시절 현대차 비자금 사건과 에스케이(SK) 분식회계 사건 수사에 성공했던 박 특검은 “(두 재단에 기금을 낸) 기업 수사도 중요하다. 매우 촘촘하게 하나하나 빠짐없이 보겠다”며 재계를 향해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했다.
앞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774억원에 대해서는 뇌물죄 적용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신 최순실씨와 딸 정유라씨에게 100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몰아준 삼성과 면세점 추가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롯데와 에스케이(SK)의 추가 기금 출연에 대해서만 뇌물 혐의를 두고 조사를 진행했다.
전날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수사팀장으로 발탁했던 박 특검은 ‘뇌물죄 정조준’ 구상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사팀 구성의 밑그림도 제시했다. 그는 “검찰의 기존 수사 기록을 원점에서 처음부터 다시 보겠다. 그래서 수사팀 인선도 신선한 인물 중심으로 할 것”이라며 “다른 시각에서 토론하기 위해 기존 검찰 수사팀에서는 전체 파견검사(20명)의 3분의 1 정도만 받을 생각“이라고 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백지 상태에서 새로 수사하고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박 특검은 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 수사와 법리 판단에 간여한 부장검사급들은 원칙적으로 파견 대상에서 배제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또 “판사 출신 변호사 2명을 특검보에 임명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검찰의 시각에서 벗어나 유무죄 최종 결정권을 쥔 법원의 시각을 수사 과정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법원은 이번과 유사한 사건에서 제3자 뇌물죄를 인정한 판례를 내놓은 바 있다. 박 특검이 뇌물죄 관련 수사 의지를 강력하게 시사하면서 대통령에 대한 조사 방식에도 관심이 모인다. 박 특검은 “(서면조사는) 시험 보기 전에 답안지를 보여주는 격이다. 서면조사 없이 대면조사를 바로 하겠다”며 “필요하면 박 대통령 대면조사를 특검이 직접 할 수도 있다”며 거듭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이날 <시비에스>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대통령 강제수사 여부는 논란이 많은데 국민의 바람이 그렇다면 그때 가서 검토를 해보겠다”라고 말했다.
과거 특검에서는 사실상 사문 조항이었던 특검법의 ‘추가 인지수사’ 조항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박 특검은 “국민이 제기하는 가장 큰 의혹 중 하나”라며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의혹도 수사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했다. 또 대통령 주치의 허가 없이 태반주사 등이 청와대로 대량 반입된 것과 관련해 “대통령 경호실과 경호실장의 법 위반 여부를 반드시 수사하겠다”고 했다. 경호실에 대한 수사는 최순실씨 등의 청와대 무단출입 조사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독일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입국시켜 수사해야 한다”며 형사사법공조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박 특검은 이날 검사 및 판사 출신 변호사 8명을 특검보 후보로 추천했다. 대통령은 3일 안에 후보자 중 4명을 특검보로 임명해야 한다.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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