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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포토라인은 누군가를 기다린다

등록 2016-11-28 14:39수정 2016-11-28 14:44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최순실씨 소환을 앞둔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입구에 포토라인이 설치돼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최순실씨 소환을 앞둔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입구에 포토라인이 설치돼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최순실씨가 검찰에 출석한 지난 10월31일 텔레비전을 본 사람이라면 포토라인이 무너져 아수라장이 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저기서 플래시 불빛이 터지는 와중에 취재기자들은 한마디 말이라도 듣기 위해서 따라붙고, 게다가 주변엔 최씨를 규탄하는 시위까지 벌어지다 보니 텔레비전 화면으로만 보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지 싶다. 그 북새통을 뚫고 지나간 최씨가 잘린 꼬리처럼 남긴 신발 한 짝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위대한(?) 족적처럼 검찰 현관 1층에 뒹굴었다. 최고의 권좌에 앉았다가 일순간에 무너져버린 주인의 처지를 대변하는 상징처럼, 빨간 명품 로고가 선명한 신발 한 짝도 어김없이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이 신발은 뒤에 내려온 검찰 직원에 의해서 원래의 주인을 찾아갔다.)

그런데 가만히 그날의 화면을 살펴보면 사진기자들의 포토라인은 무너지지 않았다. 최씨는 푹 눌러쓴 모자도 못 미더웠는지 목도리를 입 주변까지 끌어올리고 심지어는 손으로 입을 가리기까지 했다. 사진기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검찰 출두 스타일이다. 이날의 관건은 이 사람의 얼굴, 그중에서도 눈을 카메라에 담느냐에 있다. 좀처럼 고개도 들지 않고 입까지 가린다. 갑자기 시위하는 사람들이 돌발적으로 사진기자들의 앞을 가리면서 튀어나간다. 여기저기 고성이 터진다. 얼굴을 가린 최씨에게 한마디라도 듣고자 하는 취재기자들을 밀어내면서 검찰 직원들이 최씨를 끌어 앞으로 나간다. 그럴수록 최씨는 필사적으로 얼굴을 파묻는다. 소란스럽고 돌발상황도 많고 굉장히 비협조적인 취재원이었지만 포토라인은 비교적 끝까지 잘 유지가 됐다. (막판에 여러 상황으로 인해 그 라인을 넘었던 점은 동료 사진기자들에게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그 자리에서 찍은 사진은 사진기자협회에 풀로 제공했다.)

포토라인이 정착된 건 1993년 고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불려갈 때부터였다. 갑자기 나타난 정 회장을 찍기 위해 기자들이 몰리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그 와중에 한 사진기자의 카메라 플래시가 정 회장의 이마와 부딪혀 상처가 났다. 이후 무질서한 취재 현장에 대한 개선책으로 사진기자협회와 방송카메라기자협회가 공동으로 시행준칙을 정하면서 포토라인을 설치해 질서를 유지하기로 했다. 포토라인은 돌발변수가 나타나면 무너지기 쉽다. 경호원이 과도하게 가리거나 본인이 라인을 피해 달아나거나 하면 여지없이 무너진다. 또 갑자기 나타난 시위대도 포토라인을 위협한다. 그 시위에 동의하느냐 여부를 떠나서 포토라인 앞에서 벌어진 모든 돌발변수는 정말이지 반갑지 않다.

포토라인을 밟고 서서 엄청난 플래시 세례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 순간이 굉장히 치욕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차에서 내려 계단 서너 개를 오른 뒤 약 20미터 걷다 삼각형의 노란 표시 위에 몇 초 동안 서는 그사이에 이미 ‘혼이 비정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카메라를 지나서 검찰청사로 들어가면 시작은 거기서부터인데 이미 시작하기도 전에 진을 다 뺐으니 뭔 정신이 있으랴. 검찰에 불려 나가는 것도 언짢은데 번쩍거리는 플래시 세례에 취재 마이크와 각종 스마트폰들이 얼굴을 감싸고 들어온다. 그러곤 앵무새처럼 말한다. “검찰 조사에 성실히….” 싫지만 어쩌겠는가? 자칫 그 짧은 시간을 피하려다 도망다니는 닭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최순실씨는 구속됐다. 관련자들도 굴비 엮이듯 줄줄이 이 앞에 섰다. 문제는 최씨가 끝이 아니란 점. 모든 증거와 정황은 오직 한 사람을 지목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구중궁궐에서 장기농성 중이다. 광화문에는 매주 분노의 촛불이 타오른다. 오늘도 검찰청 입구에 붙어 있는 노란색 포토라인은 언젠가 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에디터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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