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스마트폰 내용물 분석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최신 스마트폰의 경우 대부분의 정보가 암호화된 채 저장돼있어, 사용자가 잠금해제를 해주지 않으면 사실상 내부자료를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본인 동의없이 제조사가 스마트폰 잠금 해제에 협조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 소지가 크기 때문에 허용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강하다.
22일 경찰청과 참여연대 쪽 설명을 종합하면, 이재근 참여연대 정책기획실장은 지난 4월 총선 때 낙선운동을 벌인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경찰은 지난 9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는데, 압수한 스마트폰(애플 아이폰6)은 끝내 들여다보지 못했다. 이 실장이 잠금해제용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청에서 작성한 ‘디지털증거분석 결과보고서’를 보면, “지난 6월21일 피의자 입회 하에 봉인을 개봉해 이미지를 생성하려 하였으나, 의뢰물에 설정된 비밀번호를 피의자가 알려주지 않아 이미징 및 분석 작업을 실시할 수 없었음”이라고 적혀 있다. 경찰은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 소유의 삼성 2세대(2G) 휴대전화는 디지털포렌식에 성공했다.
잠금해제 없이도 스마트폰에서 데이터를 빼낼 순 있다. 하지만 정상적 접근이 아니면, 암호화된 데이터를 하나씩 다 해제해야 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데이터를 암호화하려면 저장공간이 많이 필요한데, 애플 아이폰5·6·7, 삼성 갤럭시S7 등 최신형 휴대전화는 저장공간이 크다. 암호화 수준이 높아 정상적 접근이 아니면 암호화된 데이터를 들여다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경찰청 관계자는 “이들 휴대전화는 잠금해제용 비밀번호를 여러번 잘못 입력하면 저장된 내용을 지워버리는 기능이 있다”며 “운영체계가 업그레이드되거나 새로운 기종이 나오면 보안해제 기술도 새로 개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지난해 12월 테러 용의자가 사용하던 아이폰5C 잠금해제를 애플 쪽에 요청했다가 거부당했다. 연방수사국은 애플을 상대로 ‘잠금을 해제해달라’며 소송을 냈다가 “외부업체에 130만 달러(15억원)를 주고 잠금해제에 성공했다”며 소송을 취하했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이 “고객의 개인정보는 애플의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히자, 오바마 대통령은 “절대 뚫을 수 없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어떻게 테러 모의를 막을 수 있겠나”라며 애플을 비판해 찬반 논쟁이 일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경찰은 “스마트폰의 메신저 대화 내용 등을 압수수색 영장으로도 확보하지 못하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어렵다. 제조업체가 디지털포렌식에 협조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변호사)은 “공익적 목적이 있다고 해서 모든 정보수집 활동이 정당화될 순 없다. 스마트폰은 사생활이 고도로 집적된 기기다. 수사기관이 사용자 동의없이 제조사를 통해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할 수 있게 되면, 맘대로 집 안방에 드나들 수 있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제조업체들은 수사기관 협조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엘지전자 관계자는 “스마트폰 잠금해제용 비밀번호는 소유자 본인에게만 알려드리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 수준은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수사협조 요청에 응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공식 입장이 없다”고 답했다.
김지훈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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