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희 의원, 2014년 이후 청와대 구입약품 목록 공개
각종 미용 목적 주사제와 비아그라, 마취제 포함돼
청 “비아그라는 고산병 치료제” 해명에도 논란 확산
비아그라. <한겨레> 자료사진
라이넥주·멜스몬주(태반주사), 루치온주(백옥주사), 히시파겐씨주(감초주사), 푸르설타민주(마늘주사)…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청와대 의약품 구입 내역(2014년 1월~2016년 9월)에 포함된 약품입니다. 대중이 쉽게 알 만한 가정상비약인 용각산, 판피린, 버물리, 타이레놀 등과 함께 구매한 약품들입니다. 이름도 생소하고 어려운 이 약품들은 주로 영양과 미용 목적 주사제로 쓰입니다. 최순실씨 자매 이름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주사제를 대리처방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상만 전 녹십자아이메드 원장이 몇몇 언론 인터뷰에서 “필요할 때마다 청와대 의무실에 주문을 넣어두면 의무실에서 다 구비해 뒀다”고 말한 것으로 미뤄 볼 때 주로 박 대통령이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주사제들입니다. 청와대 의무실에 있기엔 부적절해 보이는 약품들이죠.
그런 약품은 또 있습니다. 발기부전치료제인 ‘비아그라’ ‘팔팔정’ 입니다. 청와대는 대통령경호실을 통해 지난해 12월 비아그라(60정)와 팔팔정(304정)을 총 364정 구매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청와대는 왜 발기부전 치료제를 구매했을까요?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즉각 해명에 나섰습니다. 23일 오전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비아그라는 발기부전 치료제이기도 하지만, 고산병 치료제이기도 하다”며 “지난 5월 대통령의 아프리카 3개국 순방을 수행하는 직원들의 고산병 치료를 위해 구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덧붙여 “이들 나라의 수도는 해발고도 1000∼2000m 고원에 위치해 있다”며 순방국가의 해발고도까지 친절하게 알려줬습니다. 하지만 해명은 또 다시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는 고산지대?
청와대가 순방 6개월 전부터 비아그라를 준비하며 고산병을 대비한 방문 국가 3곳은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입니다. 각 나라의 수도를 기준으로 해발고도를 살펴보면 캄팔라(우간다)는 1190m, 아디스아바바(에티오피아)는 2355m, 나이로비(케냐)는 1795m입니다. 참고로 백두산 해발고도는 2744m, 한라산은 1950m입니다. 고산병이 보통 해발고도 3000m를 넘을 때부터 증상이 나타나는 점을 고려하면, 3개국 어느 곳도 고산병을 유발하는 고산지대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순방 중 건강상태가 가장 걱정되는 국가원수인 박 대통령 역시 고산병엔 강한 모습을 보입니다. 지난해 4월 중남미 4개국을 방문했던 박 대통령은 당시 해발 2640m에 위치한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연 동포간담회에서 “수행원들이 고산병에 다들 고생하는데 나는 고산병이 없어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국가원수가 고산병에 강한 면모를 보인 탓일까요? 청와대는 비아그라 논란을 해명하면서 “(비아그라를) 한 번도 안 써 그대로 있다”고 밝혔습니다. ‘고산병 치료를 위해 비아그라를 준비했는데 고산지대가 아니어서 고산병 걸린 사람이 없고, 결국 약은 그대로 있다’로 정리되는 청와대의 해명. 순방 6개월 전부터 비아그라와 팔팔정을 대량으로 구매한 것은 청와대의 ‘유비무환 정신’ 때문이었을까요.
■ 화이자 “비아그라 고산병 치료에 적절치 않아”
청와대가 고산병 치료제로 304정이나 구매한 한미약품 ‘팔팔정’의 제품설명서에는 ‘여성에게 사용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비아그라를 고산병 치료 용도로 구매했다는 청와대의 해명은 또 다른 반론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비아그라 제조사인 화이자가 <쿠키뉴스>에 “비아그라는 발기부전 치료 목적 외에 고산병 치료로 사용할 수 없다. 고산병 치료를 위한 적응증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반박하고 나선 겁니다. 이어 “해외에서 사용되는 약제 중에 실데나필 성분의 네바티오라는 약이 있는데 이 약이 고산병 치료에 쓰이는 약물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판매되고 있지 않다. 비아그라와는 다른 약”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고산병 치료제는 ‘아세타졸아마이드’ ‘덱사메타손’ 등이 사용됩니다. 청와대 의료진이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요?(▶관련기사: [쿠키뉴스] 청와대 ‘비아그라’ 구매, “고산병 치료 목적” 해명 거짓)
심지어 비아그라와 성분이 동일한 전문의약품인 팔팔정은 여성 복용금지 제품입니다. 고산병 치료제로 쓰인다 한들 박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여성 직원들은 먹지 못하는 약입니다. 그렇다면 이 약은 왜 304정이나 대량구매 됐을까요?
비아그라와 팔팔정 말고도 설명이 필요한 의약품은 또 있습니다. 청와대는 지난 2014년 11월과 2015년 11월에 ‘에토미’로 불리는 일종의 마취제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를 총 30개 구매했습니다. 프로포폴과 마찬가지로 수면내시경에 주로 활용되는 약품입니다. 각종 주사제와 비아그라, 마취제…. 청와대 의약품 목록에 담긴 진실은 무엇일까요? 청와대가 의혹을 풀 수 있는 해명을 내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