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에서 일하는 김아무개(42)씨 어머니(68)는 하루에 드라마를 10편씩 보는 ‘드라마 열혈팬’이다. 그런데 최근 드라마를 끊고 뉴스에 중독됐다. 김씨는 “어머니가 ‘드라마보다 뉴스가 더 재미있다’고 하시더라. 원래는 박근혜 대통령이 부모를 일찍 잃어 불쌍하다고 하셨는데, 이번 사건 터지니까 ‘속았다’며 분해하신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사태가 두 달여 가까이 지속되면서 시민들의 일상이 바뀌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 뉴스 소비 급증이다. 중소기업 부대표로 경기도 용인에 사는 안영복(57)씨는 “나가서 술 마셔 봐야 즐겁지가 않다. 대신 일찍 퇴근해서 뉴스 보려고 자리 잡는다. 지상파 방송 대신 <제이티비시>나 <티브이조선>을 챙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제이티비시> ‘뉴스룸’은 지난 14일 시청률 9.3%를 기록했다. 종편 뉴스 최고 시청률이다. 뉴스프로그램은 아니지만 ‘대통령의 시크릿’이라는 제목으로 19일 방송된 <에스비에스>(SBS)의 시사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시청률 19%로 12년 만에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다.
인터넷 뉴스 소비량도 크게 늘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천안으로 2시간 걸려 출퇴근하는 임수관(28)씨는 “그동안 버스 타면 주로 자거나, 스마트폰으로 웹툰이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곤 했다. 내가 뉴스를 보고 있다니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코리안클릭 자료를 보면,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로 네이버 뉴스를 본 사람은 11월 첫째주 556만명으로 8월 넷째주 530만에 비해 26만명 가량 많았다.
특히 직장인들의 근무시간 뉴스 소비가 늘었다. 코리안클릭이 집계한 개인용컴퓨터(PC) 네이버 뉴스 주간 순방문자수를 보면, 최순실씨의 태블릿피시 보도가 나온 직후인 10월 마지막 주 507만명, 11월 첫째 주 550만명이었다. 지난 8월 넷째 주 392만명과 비교하면 크게 증가한 수치다. 피시로 뉴스를 보는 사람이 많다는 건 직장인들이 근무시간에 뉴스를 많이 본다는 뜻이다.
음식점에서도 드라마보단 뉴스를 틀어놓는다. 손님들 사이에 화젯거리는 단연 박 대통령이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김아무개씨는 “손님들이 시댁 흉보고, 자식 걱정하고, 아파트 사느냐 마느냐, 같은 먹고 사는 얘기를 주로 했는데, 요즘엔 박근혜 최순실 얘기만 하는 것 같다”며 “텔레비전도 거의 뉴스를 틀어놓는다. 간혹 드라마가 틀어져 있으면 ‘뉴스 좀 보자’며 손님들이 채널을 돌린다”고 말했다.
주말마다 촛불집회가 이어지면서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4주 연속 집회에 나가고 있다는 방과후학교 교사 임준형(31)씨는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일하고, 집회에 나가 자정까지 있다가 집에 돌아오면 다음날은 온종일 뻗는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콧방귀도 안 뀌는 걸 보면, 더 열받아 또 집회에 나가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행진하면 다시 힘이 난다”고 말했다. 3주 연속 집회에 나갔다는 회사원 김성은(35)씨도 “금요일 저녁 약속은 되도록 안 잡고, 사람을 만나더라도 짧게 끝낸다”고 말했다.
김지훈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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