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조사 못한 검찰 ‘참고인중지’ 만지작
과거 제주지사 ‘기업에 재단출연금’ 뇌물죄 전례
과거 제주지사 ‘기업에 재단출연금’ 뇌물죄 전례
박근혜 대통령 조사를 두고 김수남 검찰총장까지 나서 “대면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청와대와 기싸움을 벌이는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검찰 안팎에선 특검 수사를 앞두고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 혐의에 대해 모종의 판단을 내리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이 대통령 탄핵과 직결될 수도 있는 이 부분을 어떻게든 짚고 넘어가지 않을 경우 여론의 후폭풍을 피할 수 없다.
검찰이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설립을 “국정과제 수행을 위한 선의의 정책집행으로 알았다”고 주장하는 박 대통령을 조사도 하지 않고 제3자 뇌물에 대해 무혐의 처분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수석에 참고인중지 처분을 하더라도 곧바로 이어질 특검을 통해 재기수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검찰로서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지시로 기업들로부터 돈을 거뒀다”는 안 전 수석의 진술과 구체적 지시 내용이 담긴 메모가 있고, 지난해 7월과 올해 2월 박 대통령을 따로 만난 재벌 총수들이 사전에 ‘민원’을 준비한 뒤 수십억~수백억원씩을 낸 것으로 드러나 최씨 등을 제3자 뇌물 혐의로 충분히 기소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제3자 뇌물죄를 인정한 판례들을 다각도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장이 자신의 직무와 관련한 ‘광의의 부정한 청탁’을 받고 기업으로부터 재단 출연금을 받아냈다가 2007년 제3자 뇌물죄가 확정됐던 사건은, 현재까지 검찰이 확보한 진술과 사실관계만으로도 박 대통령과 최·안 두 사람에게 제3자 뇌물의 공범 관계를 적극적으로 물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판례다.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는 1995년 골프장 등을 만들기 위해 회사 소유 땅을 관광지구로 지정해달라는 청탁을 받는다. 신 전 지사는 ‘민원 현안’을 처리하려는 회사로 하여금 1996년과 1997년 두 차례에 걸쳐 모두 30억원을 자신이 지정한 복지재단에 출연하도록 했고, 이후 도지사 주재회의에서 이 회사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방침을 정책으로 채택한다. 대법원은 “돈을 낸 회사 쪽 관계자는 복지재단 이사진에 전혀 들어 있지 않은 반면, 신 전 지사의 아내가 재단 이사로 돼 있어 사실상 재단 운영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복지재단 출연금 30억원은 도정을 총괄하는 도지사가 자신의 직무와 관련해 제3자 뇌물공여죄에서 뜻하는 광의의 부정한 청탁을 매개로 이뤄진 것으로 봐야한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지사)-미르·케이재단(복지재단)-최순실 및 최순실이 임명한 재단 임원(도지사 아내)-현안 처리를 바라는 재벌 총수(관광지구 지정을 원하는 기업)-774억원(30억원)을 병렬적으로 놓고 보면, 구조가 딱 맞아 떨어진다. 뇌물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이제까지 언론 등을 통해 나온 관련자 진술과 사실 관계들을 종합하면, 제3자 뇌물 혐의에 대한 참고인중지가 아닌 기소를 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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