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사직로·율곡로에서 첫 합법집회가 열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통령에게 목소리를 전달하려면 청와대 가까이에서 집회를 열 수 있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있었다. ‘시위 대상과 주체 간 거리’에 대한 의미 있는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행정법원 제6행정부(재판장 김정숙)는 시위대의 내자교차로(경복궁역) 행진을 허용하라고 결정하면서 “이 사건 집회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집회다.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하는 특수한 목적상 사직로, 율곡로가 집회 및 행진 장소로서 갖는 의미가 과거 집회들과 현저히 다르다”고 밝혔다.
법원의 이런 결정은 ‘시위 대상자가 보이고 들릴 수 있는 거리에서 시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미국 법원의 ‘사이트 앤 사운드’(sight and sound) 원칙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0년 서울에서 열린 주요20국(G20) 정상회담 당시 경찰청 초청으로 방한해 한국 경찰의 집회시위 관리 실태를 평가한 미국 뉴욕주립대 알렉스 비탈리 교수는 “한국 경찰은 G20 행사장에서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서울역에 집회를 허용했고 행진 거리도 1㎞로 제한했다”고 비판하며 사이트 앤 사운드 원칙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원칙 천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2003년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으로부터 100m 이내에선 예외적 허용도 없이 절대적으로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제11조가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집회 장소가 집회 목적과 효과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어떤 장소에서 집회를 할 것인가를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집회의 자유가 비로소 보장된다”며 “다른 법익의 보호를 위하여 정당화되지 않는 한, 집회 장소를 항의의 대상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제까지 경찰은 청와대 방향으로는 집회 행진을 못 하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해왔다.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변호사)은 “행정법원의 결정은 집회 장소를 선택할 때 ‘보일 수 있고 들려야 한다’는 원칙을 존중한 의미 있는 결정”이라며 “문제 된 인물, 사건과 관련된 장소에 가장 근접해 집회나 시위를 할 수 있어야 메시지가 전달되는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게다가 율곡로와 사직로는 청와대 담벼락에서 900m나 떨어져 있는데, 이마저도 금지한다는 건 과하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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