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라도 보태 국민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
12일 서울 도심에선 이런 말을 하는 평범한 시민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2선 퇴진’조차 버티는 박근혜 대통령과 현실적 득실을 계산하는 정치권을 향해, 국민의 ‘상식’은 하야임을 보여주자는 한명 한명의 열망이 모여 87년 6월항쟁 이후 최대라는 100만 촛불을 이뤘다.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논리는 복잡하지 않다. 창원에서 아내와 함께 온 신아무개(55)씨는 “전문가들로 국가를 운영해도 모자랄 판에 비선 라인으로 국가를 운영하면 어떻게 하나. 국민이 보기에 대통령의 정신은 올바른 상태가 아니다. 하루빨리 내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7살 쌍둥이 아들의 손을 잡고 집회에 나온 김지영(41)씨는 “이제는 거리에 나올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국민이 아닌 측근을 위해 일했다. 대통령 자격이 없다. 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찍었다는 김명숙(64)씨는 “정말 나랏일만 열심히 할 줄 알았다. 근데 다 최순실한테 넘긴 거 아니냐”고 말했다. ‘대통령의 권위와 신뢰를 상실했다.’ 국민들의 하야 논리는 단순하지만 가장 근본적이다.
이번 사태가 적당한 타협이나 물타기로 넘어가선 안 된다는 간절함도 사람들을 거리로 나서게 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서울 강남구에서 온 30대 홍상진씨는 “집회라는 걸 처음 나와 봤다. 대통령이 하야하고, 검찰이 측근 비리를 잘 수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머릿수 보태려고 나왔다. 밤샘하려고 텐트까지 가져왔다”고 말했다. ‘속보이는 수사, 그만’ 등이라고 쓴 빈 상자를 들고나온 고등학교 1학년생 황아현(16)양은 “검찰이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74살 노모와 함께 처음으로 집회에 참여한 신은하(47)씨는 “한 사람이라도 더 나와서 국민이 이만큼 화가 났다 보여줄 수밖에 없다. 국민은 할 수 있는 일이 집회에 참여하는 것밖에 없으니 이거라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민주주의 교육의 장’이라며 자신에게도 처음인 집회 현장에 아이들과 나섰다. 경기도 안양시에서 온 40대 이아무개씨는 “집회 자체를 처음 나와 봤다. 식구들이 반대했지만, 역사적인 현장을 보여주고 싶어서 초등학생인 아들과 손 꼭 붙잡고 행진하고 있다. 저만 나오면 제 세대에서 끝나지만, 아이가 오늘의 역사를 기억했으면 한다”며 “주변에선 저까지 안 나가도 된다고 했다. 아니다. 한명의 힘이 이렇게 거대하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불만은 ‘하야’, ‘탄핵’, ‘거국내각’ 사이에서 복잡하게 나누어진 야당에도 향했다. 집회에선 “2선 후퇴 웬 말이냐”처럼 하야만이 답이라는 내용의 구호가 나왔다. 가수 이승환씨도 공연을 하면서 “제가 쓴소리 한 말씀 드려야겠다. 야당 정치인 여러분, 지금이라도 간 보지 마시고 국민의 뜻에 잘 따라주시라는 말씀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꼬집었다.
오는 19일 열릴 집회의 열기는 12일에 못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12일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17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면서 고등학교 3학년생과 재수생들이 가세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검찰의 박 대통령 조사와 19일로 예정된 최순실씨 기소 내용, 그리고 정치권의 움직임이 복잡하게 교차할 이번주 정국 흐름도 적잖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김지훈 박수진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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