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3차 범국민대회를 마친 뒤 시민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촛불집회에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인 100만명의 인파가 모였지만, 큰 불상사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시민들의 비폭력 평화시위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물대포 같은 시위진압용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인내를 갖고 대응한 경찰의 유연한 집회·시위 관리도 한몫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날 모인 시민들은 청와대와 불과 1㎞ 남짓 떨어진 서울시 종로구 내자동로터리까지 진출했다. 이곳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상징하는 상여를 앞세워 청와대로 행진하려는 시위대와 막으려는 경찰이 밤늦게까지 대치했다. 경찰과 시민 26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고, 시민 23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하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시민들은 일부 참가자와 경찰이 몸싸움을 벌이려 할 때마다 “비폭력”을 외치며 평화집회를 독려했다. 특히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이 “비폭력”을 외치며 ‘모세의 기적’처럼 경찰과 시민들 사이를 갈라놓는 모습이 종종 목격됐다.
경찰을 향한 시민들의 언어도 부드러웠다. 경찰과 가장 격하게 대치했던 내자동로터리에서도 시민들은 경찰을 한 사람씩 끌어낸 뒤 이들을 보호하면서 “수고했어요”, “어서 들어가서 쉬세요”라며 격려했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우리 아이들이 희생되지 않았으면 군 입대를 하거나 의경 갔을 나이다. 의경도 국민이고,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거듭 방송했다.
경찰 대응도 유연했다. 경찰은 최대 규모인 272개 중대 2만5천여명을 투입했지만 병력 대부분을 시위대 시야에서 벗어난 곳에 대기시켜 불필요한 위협이나 자극을 주지 않았다. 내자동로터리에서도 최대한 자진해산을 기다리다가 13일 새벽 2시30분이 돼서야 강제해산에 들어갔다. 그동안 ‘경찰 강경대응이 시위대를 자극해 폭력집회를 유발한다’는 시민사회의 주장이 역설적으로 증명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날 경복궁역, 광화문광장, 서울광장 인근은 공권력이 힘을 쓸 수 없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지만 질서가 거의 완벽하게 유지됐다. 본집회가 끝난 뒤에는 자신이 남긴 쓰레기는 물론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까지 청소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자정 넘어 쓰레기를 줍던 나광수(33)씨는 “식당 일이 늦게 끝나 집회에는 참석을 못 했지만, 이곳에 와서 쓰레기 줍는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왔다”며 서울광장부터 내자동로터리까지 다니며 100ℓ 쓰레기봉투 2개를 쓰레기로 가득 채웠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준법’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시위’의 본질이 사라진 무기력한 집회였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한 참가자는 “평화적이고 즐거운 분위기여서 좋긴 했지만, 공연이나 보다 들어가려고 여기까지 나온 건가 하는 허탈감도 있다”고 말했다.
허승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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