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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애인·친구와는 ‘법적 가족’ 될 수 없을까요?

등록 2016-11-07 13:48

이화여대 ‘풀하우스’ 파트너등록법 서명 지지 잇따라
“1인 가구시대, 결혼 전제 가족법 현실과 괴리” 강조
덴마크 1989년 첫 시행 뒤 세계 20여개 나라서 허용

지난달 2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진행된 파트너등록법 입법 촉구 서명 팻말.  트위터 갈무리
지난달 2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진행된 파트너등록법 입법 촉구 서명 팻말. 트위터 갈무리
‘친구, 애인과 나는 왜 법적 가족이 될 수 없을까. 결혼이 아닌 다른 가족제도는 없을까.’

지난달 27일과 2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이 대학 법학전문대학원 소속 모임 ‘풀하우스’가 이런 의문을 공유하며 ‘파트너등록법’(가칭) 지지 서명 캠페인을 했다. 풀하우스는 7일 <한겨레> 서면 인터뷰에서 “성별이나 성애적 관계 여부와 무관하게, 친밀함을 바탕으로 주거와 생계를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파트너’를 가족으로 등록할 수 있는 법”이라고 이 법을 소개했다. 서로 돌보고 지내는 1인 가구들, 장기돌봄 관계인 고령자, 동거·장기연애 커플, 결혼하지 않고 부부로 사는 재혼 커플, 동성 커플, 생활주거공동체 등 기존 제도로는 가족이 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그동안 온·오프라인에서 약 1100명이 지지 서명을 했다. 풀하우스는 지난 5월 재단법인 동천의 ‘공익·인권 활동 프로그램’ 활동팀으로 선발돼 캠페인을 비롯한 각종 홍보를 하고 있다.

풀하우스는 인터뷰에서 캠페인을 벌인 배경을 “가족법과 현실의 괴리”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혼인 가구 말고도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하는 게 현실임에도 이들은 ‘법외 가족’에 해당돼 주거·보험·고용·의료·금융·복지 혜택에서 저절로 소외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1인 가구가 27.2%로 가장 많다. 2인 가구 26.1%, 3인 가구 21.5%, 소위 ‘정상 가족’의 표준이던 4인 가구는 18.8%다. 애초 통계청은 1인 가구가 2020년 이후부터 가장 많은 가족모델이 되리라 예상했으나, 현실은 더 빠르게 변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최원진 활동가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1인·동거 가구는 특히 경제 분야에서 많은 불편을 겪는다고 호소한다. 동거 관계는 법적으로 1인 가구로 분류돼 임대주택 신청이나 전세자금 대출에서 후순위로 밀린다. 상속 문제도 민원이 많다”고 전했다.

통계청은 2012년 발표한 ‘장래가구추계’에서 혈연 관계가 아닌 이와 동거하는 가구는 2010년 20만5000가구에서 2035년 22만5000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1인 가구의 상당수를 실제 상호돌봄으로 유지되는 생활동반자 가구로 보지만, 실태를 조사한 통계는 없는 실정이다.

파트너등록법은 2014년 10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초안을 마련한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과 거의 같다. (▶관련기사 : <한겨레> 법률로 동거가족 보호하는 ‘생활동반자법’ 기대하시라) 법안의 주요 내용은, 혈연이나 혼인 관계가 아닌 동거가족 구성원이 기존 가족관계와 동등한 법적 보호를 받게 하는 것이다. 가족으로서 권리와 함께 부양의 의무, 가사로 인한 채무의 연대 책임 등도 부여한다. 생활동반자법엔 없지만 파트너등록법에 담긴 사항은 공동 입양이다.

201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한겨레> 그래픽 자료
201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한겨레> 그래픽 자료
이런 법안들은 오늘날 가족 구성이 성애적 관계인 남녀끼리 결혼해 친자식을 키우는 단일한 모델을 벗어나고 있는 현실에 기초한다. 하나의 법제도를 갈수록 다양해지는 가족관계에 적용하기 어려워지는 실상을 반영한 것이다. 생활동반자법은 초안 공개 즈음 1인 가구 증가, 혼인율 감소, 혼인연령 상향, 저출산, 고령화, 성소수자의 행복추구권 해석 등 가족 문제를 관통하는 이슈로 주목받았고, 초안으로는 드물게 4번의 토론회가 열렸다. 진선미 의원은 당시 입법 취지를 설명하면서 “누구나 삶을 함께 할 특별한 한 사람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며,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여러 유형의 동반자 관계를 법적 가족으로 끌어안아야 사회의 건강과 존속이 보장된다는 의견은 가족학계의 중론이다. 박우철 덕성여대 교수(아동가족학과)는 “가족심리적으로 제도에 속한 가족의 안정성이 훨씬 크다. 신뢰도가 높아질수록 헌신도도 커지기 때문이다. 개인과 사회의 건강한 행동은 제도적 안정에서 미시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데, 가족 유형 격변기에 가족제도는 지체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혼기’라는 새로운 생활주기가 분명해졌음에도 정부의 가족지원센터인 건강가정지원센터 프로그램은 여전히 결혼 중심”이라고 지적했다.

파트너등록법 촉구 캠페인은 최근 여성주의 단체를 중심으로 낙태죄 폐지 운동이 벌어지고, 에스엔에스(SNS)에서 ‘나의 자궁, 나의 선택’ 해시태그(#)가 번지는 등 자기결정권이 행복추구권 실현의 결정적 요소로 떠오르는 흐름에 부합한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과)는 “낙태죄 폐지 운동의 주요 맥락인 자기결정권은 성적으로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누구와 가족을 이뤄 살지는 사생활이자 자기결정권이며, 이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파트너등록법은 유럽에서 들여온 개념이다. 혈연·혼인 외 사유로 형성된 새로운 가족의 성립과 법적 효력, 그 등록을 규정하며, 법적 혼인관계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인정하는 대안적 제도인 ‘시민결합’(Civil Union)의 한 유형이다. 덴마크는 1989년 10월1일 세계 최초로 파트너등록법을 시행했다. 현재는 유럽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20여개국에서 시민결합을 허용 또는 일부 허용하고 있다.

풀하우스는 지지 서명을 모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연내 제출할 예정이다. 진선미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 “생활동반자법안을 더 다듬고 외연을 넓혀 다시 의제화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장인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7월 ‘결혼 없는 출산’을 적극 포용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동거 가족에서 태어난 자녀가 법적 결혼으로 출생한 자녀와 같은 복지를 받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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