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주최한 2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20만명(경찰 추산 4만5천명), 전국의 시위를 합하면 30만여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강창광 기자
“부끄러운 나라를 물려줄 수 없다.”
분노한 ‘보통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이들이 외친 ‘퇴진’ 구호는 대통령 개인뿐 아니라 이런 체제가 가능하도록 침묵하고 협조해왔던 우리 사회 기득권 구조 전체를 향해 있었다. 지난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주최한 2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20만명(경찰 추산 4만5천명), 전국의 시위를 합하면 30만여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이날 서울 종로 일대를 행진하며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가장 많이 외친 구호는 “박근혜는 물러나라”였다. 퇴근길에 집회에 참여했다는 김종현(45·강원도 철원)씨는 “박근혜를 뽑아서 너무 죄송해 반성하려고 나왔다. 집회는 생전 처음이다. 박 대통령이 4일 대국민 사과에서 어려운 시절 운운하며 ‘감성팔이’ 하는데 그런다고 해결되나. 아이들도 잘못하면 책임지고 내려와야 한다는 걸 안다. 박 대통령은 나이가 몇살인가”라고 말했다. 경기도 김포시에서 온 박춘봉(53)씨는 “우리가 대학생 때 열심히 데모해서 민주주의가 이뤄졌고,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면 아이들한테 좋은 나라를 물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희대의 사기꾼이 나타나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 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고, 제대로 된 한국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는 권력에만 기댄 이들이 우리 사회 정치·경제·문화·교육 등 각 분야를 장악하고 있음을 ‘날것’으로 드러냈다. ‘대통령 하야’를 넘어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큰 이유다. ‘검찰 개혁’과 ‘사회 양극화 해소’ 등 공정한 사회에 대한 요구도 터져나왔다. 서울 동작구에서 ‘동작 깻잎’이란 별칭으로 활동하는 50대 여성은 “지난 100년 동안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했다. 정치권력과 기업과 검찰이 똘똘 뭉쳐 왜곡시킨 사회에서 살아왔다. 앞으로 100년도 그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센터에서 일하는 권미영(51·경기도 안산시)씨는 “박 대통령이 내려온 다음이 더 문제다.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 공정한 재분배가 이뤄지는 나라를 만들지 등으로 고민이 확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김병준 총리 내정 등 대통령 나름 수습책을 내놨음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나온 것은 그에 만족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사람들이 ‘박근혜 퇴진’이란 구호를 외치지만, 광장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쌓였던 문제들이 박근혜 정부가 잘못한 결과라는 추론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면 더 본격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