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1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36개 대학교 학생들이 대선 1주년 '안녕하지 못한' 대학생들의 합동 기자회견을 마치고 '안녕들하십니까' 광장 게시판에 대자보를 만들어 붙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3년 전보다 더 안녕치 못한 사회에 사는 지금 견딜 만 하십니까?”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가 현재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무관심’에 이렇게 묻는 장문의 글을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3년 전 철도 민영화 반대 철도노조 파업 당시 뜨거운 논쟁을 일으킨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상기하며 쓴 글이다.
A4용지 2장 반 길이의 글에서 박 상임이사는 “2013년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 철도공사가 202명을 형사고발하고, 99명을 파면·해임했습니다. 지금 4주째 이어지는 철도파업은 최장기 파업입니다. 철도노조는 완전한 합법 파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 파업에 대해 다시 3년 전처럼 형사고발과 파면·해임이 진행되고 있으나 이번에는 대자보가 붙지 않습니다. ‘성과연봉제 폐지’라는 주장을 내걸었기 때문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는 성과연봉제를 ‘평생 인턴사원제’라고 표현하며 “지금도 불안한 철도는 더욱 위험해질 것이며, 결국 민영화로 가는 레일 위를 달릴 것인데, 정녕 철도노조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어 침묵하는 건가요?”라고 덧붙였다.
박 상임이사는 “3년 전 ‘안녕하십니까?’ 그 대자보 이후 우리 사회는 더욱 안녕치 못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 사태, 2016년 경주 지진을 비롯한 끊이지 않는 참사들, 급기야 오늘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우연’일 수 있고,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경주에 지진이 나도 활성단층 위에 세워진 원전은 안전하다는 소리만 되풀이하는 무책임한 권력자들…. 대부분의 재앙은 자연재해로 인한 것이 아니라 평소 생명과 안전이란 가치를 외면하고 오로지 이윤 추구만을 위한 결과입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얼마나 잔인한 나라입니까?”라며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태, 고 백남기 농민 등 현안을 열거한 뒤 “법보다 시행령과 행정지침이 위에 있고, 헌법보다 대통령의 심기가 위에 있는 나라, 대통령의 심기 위에 최순실이 있고, 그가 뜻하는 대로 하루아침에 수백억 자산의 재단이 뚝딱 만들어지는 나라, 자신의 딸을 위해 월 1억원 승마 훈련비를 쓰면서도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강변하는 나라를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범죄혐의 수사를 청와대에서 지시하고 보고 받는 셀프수사를 할 수 있는 대통령의 오른팔인 우병우는 또 어떻습니까?”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집권여당이 대통령의 호위무사 부대가 되어 심기경호에만 열을 올려도 결기 있게 제대로 붙어보지도 못하는 여소야대의 국회가 있는 나라, 탄핵의 사유는 쌓여만 가는데 탄핵이라는 말 한 마디 못하는 야당은 아무런 가치와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대선 승리, 정권 교체만 골몰하는 비겁하기만 한 야당이 있는 나라에서 40분에 한 명씩 목숨 줄을 끊고 있고, 하루에도 5~6명 이상이 산재로 사망하고 수만명의 하청노동자들이 무더기로 잘려도 잘만 돌아가는 나라. 농민이, 빈민이 못 살겠다는 비명이 하늘에 닿았음에도 아무 이상 없다는 듯이 잘만 돌아가고, 장애인이, 성소수자가, 여성이, 아동들이 줄줄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인권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녕 아직은 견딜 만하십니까? 저는, 정녕 이 모욕을, 이 야만을, 이 반인권을, 이 폭력을 견딜 수 없습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철도노조와 공공부문의 파업 노동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거기서 매 맞고 끌려가더라도 독재자의 나라에서는 저항만이 사람의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이 나라는 민주공화국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라며 글을 맺었다.
박 상임이사가 언급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3년 전 철도노조가 민영화 반대 파업을 할 때 고려대 학생이 붙인 것으로, 전국 대학가에 번졌다. 국정원 대선 개입, 밀양 송전탑 등 정치·사회 현안과 함께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 등에 대한 공감과 공분을 일으킨 바 있다. 최근에는 경북 성주군 곳곳에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안녕하십니까’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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