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청년이 있습니다. 온갖 스펙을 쌓으며 2년 넘게 취업을 준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던 취업준비생. 올 상반기에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최종면접까지도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최종합격자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 청년에게 수개월이 지나 코레일이 문자 한 통을 보냈습니다.
“우리 공사에서는 철도파업에 따른 긴급 대체인력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대체인력 경력자는 향후 정규직 시험에 우대합니다.”
코레일은 최근 성과연봉제 철회 등을 요구하며 공공부문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철도노조의 파업을 이유로 대체인력을 최대 3000명까지 모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체인력 모집도 문제인데, 그 와중에 지난 공채에 지원했던 취업준비생들에게 ‘채용 알림 문자’까지 보냈습니다. 문자를 받은 청년은 화가 났습니다. ’필요 없다고 버릴 때는 언제고 파업 대체인력으로 들어오라고?’ 그렇게 <한겨레> 페이스북으로 제보가 도착했습니다.
[페친] 너무 화가 나네요. 지인이 지난 상반기 코레일 최종면접에서 탈락하고 큰 상처를 받았어요. 근데 이제 급하니깐 지원하라고 하네요. 비록 지금은 취업이 되었지만, 취준생은 필요 안 하면 버리고, 필요할 때는 부르는 그런 존재인가요? 지인이 무척 기분 나빠해 대신 제보합니다.
문자를 받은 청년의 지인이 대신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코레일은 채용 정보를 제공한 것뿐이데, 무엇이 이토록 청년들을 화나게 했을까요?
[한겨레 페북] 어떤 점이 가장 많이 화가 나는 건가요?
[페친] 파업 기간 중에 코레일이 필요하니까 한 달 임시로 채용한 다음 추후 채용에서 가산점을 준다는 방식으로 취업준비생들을 유인하는 게 화가 나요. 속 보이는 짓이죠. ‘올 사람은 널려있으니 이번 파업 때 일해라. 가산점 좀 줄게’ 뭐 이런 느낌? 아주 만만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이래요.
[한겨레 페북] 지금 다른 회사에 채용되지 않았다면, 지인분은 코레일 대체인력 채용에 지원했을 수도 있을까요?
[페친] 네. 아마도 그랬겠죠. 취준생이면 지원했을 거고, 자존심 상하고 창피해 아무에게도 말 못했을 겁니다. 한 달 쓰고 버리는 존재라도, 취업준비생들에게 ‘가산점’을 받는다는 건 결코 작지 않은 혜택이거든요.
청년은 가산점으로 취업준비생들을 유인하는 코레일의 ‘갑질’에 화가 난 것입니다. 회사와 노조의 갈등으로 채용된 대체인력들이 희생양이 되진 않을까 우려도 했습니다. 실제 2013년 철도노조 파업 당시 코레일은 대대적으로 대체인력을 채용한다고 공고했지만, 파업이 끝나자 일방적으로 채용절차를 중단한 바 있습니다.
2014년 1월 <한겨레>기사입니다.
[페친] 전 사실 파업에 큰 관심은 없습니다. 그냥 취준생들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 같아 속상해요. 모쪼록 이번 일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었으면 합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 8월 청년실업률은 9.3%. 8월 기준으로 1999년 이후 최고치라고 합니다. 1997년 말 IMF 외환위기 직후 실업률이 급증했던 당시의 수준인 셈이죠. 청년실업자 역시 41만6천명이라고 합니다. 청년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정부가 노조와 대화 없이 강경 대응을 예고함에 따라 철도파업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파업이 길어질수록 대체인력 채용도 늘어나겠죠. 모든 대체인력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순 없을 겁니다. ‘페친’님의 말대로 고래 싸움에 취준생들의 등이 터지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한겨레 페이스북은 실시간 댓글로 페친들의 수다를 듣거나 한 명의 페친과 메신저로 집중 대화하는 <페친 토크>를 비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페친 토크를 바탕으로 디지털 기사를 전송합니다. 많이 참여해주세요.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지난 6일 한국철도공사가 대체인력 채용을 위해, 지난 공채에 지원했던 취업준비생들에게 보낸 문자.
한국철도공사 누리집에 뜬 대체인력 채용 공고
코레일 대체인력 채용 취소로 지원자들 골탕
12월 27일 코레일의 철도파업 대체인력 채용공고를 보고 한 지역본부에 입사 지원을 한 이아무개씨는 31일 코레일에서 보내온 문자메시지를 받고 허탈했다. “철도노조 파업 대체인력 모집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파업 철회로 향후 대체인력 추가 채용 계획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공공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최근 계약 종료로 실업 상태가 된 이씨는 1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코레일 정규직 채용 시에 가산점 등을 준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아이들 학비라도 벌고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지원했다. 그런데 코레일이 문자 한 통으로 채용 계획이 취소됐다고 통보했다. 이번 채용이 얼마나 졸속으로 이뤄진 것인지 알 수 있다. 정부가 정말로 무책임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중략)
그러던 코레일이 대체인력 채용을 중단하면서 지원자들이 한순간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것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파업 종료로 인해 채용 과정을 중단했다. 지원자들의 불만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미 대체인력으로 채용된 217명의 거취 문제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