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사진 가운데), 진경준(왼쪽), 김형준. 2016년은 세 사람 때문에 ‘검찰 치욕의 해’로 기억될지 모른다. 지난 4월 진경준 검사장의 넥슨 비상장주식 특혜 매입 사건으로 시작된 검찰의 위기는 지난여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각종 비리 의혹과 최근 김형준 부장검사의 ‘스폰서’ 사건을 거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공익의 대변자’라는 수식어를 무색하게 만드는 이들 세 검사의 사익 추구 행위는 검찰의 위기를 넘어 우리 사회의 근간마저 흔들고 있다. 그동안 검찰은 정치권력 눈치보기와 재벌 봐주기 논란 등으로 불신을 받아왔다. 여기에 더해 출세지상주의에 빠져 정의와 공익은 뒷전인 조직으로 비친다. 그만큼 일선 검사들의 동요는 훨씬 심각하다. 든든한 배경으로 승승장구한 0.1%의 ‘금수저’ 검사들이 나머지 99.9%의 검사들을 소외시키고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검찰 내 양극화가 위기의 양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어서다. 위기의 극복은 더이상 ‘금수저’들의 득세를 허용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검찰은 과연 ‘그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청와대사진기자단, 연합뉴스 hyopd@hani.co.kr
2016년은 대한민국 법조 기자들에게 매우 특별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검찰의 대형 비리 수사를 취재하느라 바빴던 여느 때와 달리 검찰이 직접 수사 대상이 된 사건들을 잇달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도 모두 중량급이다. 촉망받던 부장검사에서부터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검사장, 그리고 사정 권력의 정점에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검찰 안팎의 실력자들이 이처럼 약속이나 한 듯 나란히 비리에 연루된 때가 또 있었을까.
일선 검사들은 허탈감에 빠져 있다. ‘스폰서 의혹’으로 23일 대검 특별감찰팀에 피의자로 소환돼 조사를 받은 김형준 부장검사와 넥슨 주식을 뇌물로 받은 혐의로 지난 7월 구속된 진경준 전 검사장, 그리고 각종 비리 의혹으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검찰 내 0.1%에 해당하는 ‘금수저’들이었다. 혼맥이나 권력자와의 인연을 배경으로 검찰에서 잘나가던 검사들이었다. 특혜란 특혜는 다 챙겼던 이들이 역설적으로 지금 검찰 조직을 존폐 위기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매일 사건 기록과 씨름하면서 묵묵히 일만 하던 검사들은 이들의 행태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검찰 내 ‘금수저’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체로 금수저들은 자기 관리에 철저해 구설에 오른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우병우, 진경준, 김형준은 달랐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악덕 검사’의 모습을 현실에서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외부의 시선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거침없고 태연하게 검사와 범죄자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들이 연루된 사건 취재 기록을 뒤져 ‘세 검사’의 과거와 현재를 추적했다.
진경준 검사장이 지난 7월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특임검사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검찰청사에 나오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심재륜·안대희 사단’엔 못 끼어
우병우 수석에게 지난여름은 평생 잊지 못할 악몽의 계절이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언론이 그와 그의 처가를 둘러싼 비리 의혹을 연일 보도했다. 하지만 한 달 가까이 이어진 보도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석수 대통령 특별감찰관이 그를 검찰에 수사의뢰하면서 최대 고비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되레 이 감찰관으로 하여금 검찰 수사를 받게 만드는 절묘한 ‘되치기’로 위기를 벗어났다. 검찰은 여전히 그의 눈치를 보고 있다. 우 수석 관련 수사를 하고 있는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 고검장)은 수사에 착수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마치 세상에서 잊히기를 바라는 듯 감감무소식이다.
우 수석의 버티기는 박근혜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의 버티기가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은 그의 강한 ‘멘탈’에서 해답을 찾는다. 차돌처럼 단단한 자존심이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우 수석은 대학교 3학년 때 사법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연수원 동기들에 비해 2~3년 빨리 검사로 임관했다. 사법연수원 성적도 좋아 초임이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이었다. 스스로 강한 프라이드를 가질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는 셈이다.
정작 평검사 시절에는 동기들에 비해 그리 큰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그는 검찰 안에서 ‘특수통’(권력형 비리 수사를 전담하는 특별수사부 근무 경력이 많은 검사)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정통 특수통’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와 비슷한 연배에 검찰에서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린 검사들은 대체로 ‘심재륜(전 부산고검장) 사단’이나 ‘안대희(전 대법관) 사단’에 차출된 경력이 있다. 심재륜 전 고검장은 대검 중수부장 시절 한보그룹 비자금 사건 재수사를 지휘해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를 구속시켰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구속시킨 것은 당시 검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안 전 대법관도 2003년 역시 대검 중수부장을 지내면서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했다. 안 전 대법관은 당시 ‘국민검사’라고 불릴 정도로 대중적 인기도 좋았다. 수사 좀 한다는 평을 듣던 검사들은 당시 ‘심재륜 사단’이나 ‘안대희 사단’에서 일하기를 열망했고, 그 경험을 마치 무공훈장처럼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 수석은 두 사단 어디에도 끼지 못했다.
연이은 검사 스캔들로 얼룩진 2016년
검찰 안팎 실력자들 줄줄이 비리 연루
검찰 내 0.1%에 해당하는 ‘금수저’들
특혜 누리다 검찰조직 위기로 내몰아
능력보다 출세욕 앞세운 성향에다
‘소년등과’ 했다는 자존심도 닮은꼴
‘공익의 대변자’ 이미지 훼손 주역
일선 검사들의 허탈감만 높아져
그가 본격적으로 ‘특수통’의 길로 접어든 것은 2001년 김대중 정부 당시 ‘이용호 게이트 특검’(차정일 특검)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당시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을 구속하는 등 커다란 수사 성과를 올렸다. 현직 총장의 동생이 연루된 사건이라 당시 검사들은 특검팀 차출을 꺼렸지만, 우 수석은 특검에 자원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2003년에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으로 있으면서 당시 특수2부장이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함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을 수사했다. 이 사건은 에버랜드의 전·현직 경영진을 공소시효 만료 하루 전에 기소함으로써 주범 격인 이건희 회장의 시효를 중단시킨 아이디어로 주목받았던 수사다.
그는 2009년 대검 중앙수사부 중수1과장에 발탁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이인규 중수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정운호 게이트’로 구속기소돼 재판 중)과 함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를 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다. 당시 수사팀은 피의사실 공표 논란을 무릅쓴 적극적인 언론 플레이로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여론도 노 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수사팀은 목적을 달성하는 듯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수사는 전면 중단됐고, 이인규 중수부장이 사표를 내는 등 수사팀은 풍비박산이 났다. 우 수석의 전성기도 함께 끝나는 듯했다.
진경준 검사장이 부정비리로 구속된 가운데 지난 7월19일 오전 서울 중앙지검 로비에 ‘검사선서’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경북고 출신 아니라 불이익’ 푸념
이때 그를 구해준 이가 김준규 전 총장이다. 임채진 전임 총장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낸 뒤 총장이 된 김 전 총장은 우 수석을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으로 발탁했다. 노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커녕 오히려 승진시킨 셈이다. 김 전 총장은 이에 대해 “당시 중수부장이 책임지고 사표를 낸 상태였기 때문에 중수과장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치다는 내부 조언이 있었다. 지방으로 보내면 좌천성 인사로 보일 것 같아 차라리 내 참모로 두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장 밑에서 그는 대검 수사기획관까지 지냈다. 평검사 시절 자신을 앞섰던 동기들과 검사장 승진 경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스펙이 드디어 갖춰진 것이다.
그러나 우 수석은 검사장이 되지 못했다. 10명의 동기들이 자신을 제치고 검사장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는 크게 낙담했다고 한다. 그를 잘 아는 한 법조인은 “자존심이 센 그에게 검사장 탈락은 큰 충격이었다. 사석에서 ‘나보다 못한 놈들도 다 검사장이 됐다’고 푸념했다”고 말했다. 최근 시사월간지 <신동아>가, 우 수석이 민정수석 취임 3개월 뒤인 지난해 4월 사석에서 기자들과 나눴던 얘기를 보도한 기사에도 그의 ‘검사장 콤플렉스’가 잘 드러난다. 그는 “(검찰이) 일만 있으면 나를 불러서 부려먹고는 승진은 다른 놈 시켜주고. 검찰총장처럼 한 자리뿐이면 이해하지만 한 기수에 10명을 시켜주면서 나만 안 시켜주니까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했다. 일만 시켜먹고 승진 때는 빼고. 그게 더 억울하다”고 말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들은 그의 검사장 탈락이 동기들과의 경쟁에서 밀린 것이라고 말한다. 우 수석을 비롯한 연수원 19기는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에 대거 검사장으로 승진했는데, 우 수석은 당시 같은 티케이(대구·경북) 출신의 김강욱 현 대전고검장에게 밀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고검장은 경북고 출신으로 검찰 안에서 주류로 통하는 정통 티케이 출신이다. 영주고 출신인 우 수석도 티케이로 분류되면서 김 고검장과 경쟁하게 됐다. 그는 사석에서 자신이 경북고 출신이 아닌 티케이라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우 수석이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것은 그의 수사 스타일 탓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는 수사를 독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2004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 시절 안상영 당시 부산시장 관련 일화가 대표적이다. 우 수석은 안 시장이 당시 한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를 잡고 당시 부산구치소에 별건으로 수감돼 있던 그를 서울구치소로 불러 올렸다. 하지만 우 수석은 안 시장을 단 한 번도 조사하지 않고 구치감에 하루 종일 내버려둔 뒤 다음날 부산구치소로 돌려보냈다. 안 시장은 부산구치소에 내려온 뒤 하루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검찰 안팎에선 안 시장이 구치감에서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는 말이 나돌았다.
당시 법무부는 조사를 벌인 뒤 “안 시장의 건강 등을 고려할 때 서울로 호송하기보다 수사팀의 부산 출장조사가 더 바람직했다”고 결론 냈다. 또 안 시장의 서울구치소 이송을 지휘한 우 수석의 책임을 물어 서울중앙지검에 ‘기관 경고’ 조처가 내려졌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서영제 변호사는 지난해 펴낸 회고록 <누구를 위한 검사인가>에서 “당사자인 우 검사는 ‘내가 왜 징계를 받아야 하느냐’고 울분을 표시했다”며 “가장 가벼운 경고 조치로 마무리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으나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우 수석의 가장 든든한 배경은 그의 장인인 고 이상달 정강중기건설 회장이었다. 경남 합천 출신인 이상달 회장은 1980년대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동향임을 내세워 각종 이권 사업에 뛰어들어 큰돈을 벌었다. 특히 경찰 수뇌부의 후원자 역할을 하면서 경찰 간부 인사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탄탄한 인맥을 쌓았다. 이 회장은 1990년대 초 기흥컨트리클럽 운영권을 퇴직 경찰관들의 조직인 경우회로부터 양도받아 골프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골프장 사업이 번창하면서 90년대 중반부터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 쪽으로도 발을 넓혔다. 검찰 출신의 한 원로 변호사는 “이 회장이 당시 몇몇 검찰 간부들의 후원자 역할을 한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우 수석을 둘째 사위로 맞이한 것도 이 무렵이다. 슬하에 아들이 없었던 이 회장은 네 명의 사위들 가운데 우 수석을 가장 아꼈다고 한다.
든든한 재산, ‘스폰서 유혹’에서 자유
우 수석은 장인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기흥골프장을 잘 ‘활용’했다.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기흥골프장은 법조인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다. 우 수석은 검찰 요직에 있는 선배들과 동료 검사들의 기흥골프장 부킹을 자주 도와줬다고 한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당시 잘나가는 검사들 가운데 우 수석과 함께 기흥골프장을 이용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고 말했다. 우 수석은 골프장을 찾은 동료 검사들한테 마치 골프장 경영에 직접 관여하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고 한다. 우 수석은 최근 기흥골프장 관련 비리 의혹에 대해 ‘처가의 일이라 잘 모른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 수석이 장인의 덕을 가장 크게 본 것은 그가 물려준 재산이다. 우 수석은 재산공개 대상이 된 2015년에 405억원, 2016년에는 393억원의 재산을 신고해 정부 고위공직자 가운데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든든한 재산은 그를 ‘떡값’과 ‘스폰서’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었다. 그는 삼성에버랜드 사건 수사 당시 삼성 쪽 인사들을 사석에서 일절 접촉하지 않은 일로 화제가 됐다. 엄청난 재산이 그를 강직한 이미지의 검사로 만든 셈이다.
우 수석에 대한 검찰 내 평가는 엇갈린다. 일처리만큼은 깔끔하게 잘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실제보다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한 특수통 출신 변호사는 “우 수석이 수사를 잘했다고 하지만 검찰에서 그 정도 수사 능력을 갖춘 검사들은 많다. 우 수석의 출세가 온전히 그의 업무 능력만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검사들의 부정적 평가는 그의 ‘이중 잣대’에 집중된다. 우 수석은 지난해 말 검찰총장 인사 때 한 유력 후보의 위장전입을 문제 삼아 비토를 놨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보는 연수원 17기 선두 주자로 검찰 선후배의 신망이 두터웠다. 우 수석은 배우자의 상속 재산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가족회사를 만들어 법인 소유 차량을 사적으로 사용하는가 하면 통신비 등 생활비용을 회사에 떠넘긴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남의 허물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자신의 범죄에 가까운 비위에는 눈감고 있는 셈이다. 서울 지역 검찰청 소속의 한 검사는 “우 수석 관련 의혹 보도를 보면서 검사 시절 그의 강직한 이미지가 사라진 것 같다. 좋은 검찰 선배를 잃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넥슨 비상장 주식을 뇌물로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진경준 전 검사장은 우병우 수석과 닮은 점이 있다. 진 전 검사장도 우 수석과 마찬가지로 대학교 3학년 때 사법시험에 합격한 ‘소년등과’ 출신이다. 그는 이듬해인 대학 4학년 때 행정고시에도 합격해 우 수석보다 스펙을 더 쌓았다. 당연히 그도 우 수석 못지않게 자존심이 강했다.
진 전 검사장은 그에게 120억원대의 주식 대박을 안겨준 김정주 전 대표보다 더 든든한 ‘빽’이 있었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 이상주 변호사와 절친 관계다. 또 미국 연수 시절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와도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이명박 정권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파견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인사였다.
그는 ‘일개’ 인수위원이 아니었다. 엠비 정부 2년째인 2009년 임채진 당시 총장이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사표를 낸 뒤 후임 총장 인선 작업이 진행되던 때였다. 검찰 안팎에선 권재진 당시 서울고검장(민정수석을 거쳐 법무부 장관에 임명됨)이 후임 총장에 임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천성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발탁됐다. 애초 청와대 안에서는 권 고검장을 낙점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막판에 천 지검장으로 바뀌었다는 말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진 전 검사장이 대통령의 사위와 아들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천 후보자는 ‘스폰서 의혹’이 불거져 총장 의자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낙마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진경준이 당시 천 후보자를 세게 밀었다는 건 거의 정설에 가깝다. 이 때문에 권재진 장관이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말도 나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권 고검장이 청와대 민정수석에 임명된 뒤 진 전 검사장은 지방검찰청으로 좌천성 인사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 대통령 가족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다닌다는 이유로 괘씸죄에 걸렸다는 말이 나왔다.
증권범죄합동수사단 단장 김형준 검사가 지난해 12월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기관투자자 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15.12.3. ryousanta@yna.co.kr
‘소맥’ 대신 고급 위스키만 주로 즐겨
하지만 그는 2011년 취임한 한상대 총장에 의해 다시 중용되면서 엠비 정부에서 검사장 승진에 필요한 스펙을 모두 갖췄다. 그는 박근혜 정부 첫 인사 때 인천지검 2차장에서 의정부지검 차장으로 밀렸다. 그가 다시 기사회생한 것은 공교롭게도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민정수석으로 승진한 때와 겹친다. 진 전 검사장은 2015년 2월에 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법무부 요직인 기획조정실장에 임명됐는데, 당시 이 인사는 우 수석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 전 검사장이 120억원대의 수상한 ‘주식 대박’을 신고했는데도 무사히 인사검증을 통과했다. 이 때문에 진 전 검사장과 우 수석이 사적인 인연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지난여름 <조선일보>가 ‘우병우 처가의 강남 땅을 넥슨이 매입할 때 진 전 검사장이 거간꾼 노릇을 했다’고 보도한 건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했다.
그는 초임이던 1996년 서울지검 형사부 근무 당시 6000원짜리 열차표를 1만원에 판 회사원을 구속기소한 일이 드러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 회사원은 앞서 같은 혐의로 두 차례나 처벌(구류와 벌금)을 받은 전과가 있었다. 진 전 검사장은 동종 전과를 이유로 관련법에 따라 그를 구속했다. 검사로서 법대로 처리한 것이었지만 누리꾼들의 비난 댓글이 쇄도했다. 남에겐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이중성을 질타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23일 검찰에 피의자로 소환돼 조사를 받은 김형준 부장검사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사위다. 박 전 의장은 김영삼 정부 때 법무부 장관을 지낸 대표적인 검찰 원로다. 그는 정치에 입문한 뒤에도 검찰 내 피케이(부산·경남) 세력의 대부 역할을 하며 검찰 인사 등에 크고 작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김 부장검사는 그런 장인의 ‘인적 네트워크’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가 검찰 안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임에도 화려한 스펙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을 장인의 후광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그는 검찰 안에서 증권·금융 비리 수사에 능통한 ‘금융통’으로 꼽힌다. 2006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와 2007년 삼성특별수사감찰본부 등 경제 사건 전담 부서에서 주로 일했고, 2009년엔 외교부 유엔대표부 법무협력관으로 해외 파견 근무를 하기도 했다. 주요 보직을 맡다 보니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던 사건 수사에도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다. 2013년에는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장을 맡아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의 지인들은 그를 능력있고 성격 좋은 검사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의 ‘밤문화’는 전혀 딴판이었다. 최근 불거진 고교 동창 사업가(구속)와의 ‘스폰서 관계 의혹’의 전모는 영화에서 조롱거리로 등장하는 ‘구악 검사’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는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일대의 허름한 술집에서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술)을 즐기는 검사들과 달리, 고급 위스키와 접대부가 나오는 서울 강남의 고급 술집에서 접대를 받았다. 술값만 150만~200만원에 이르는 비용은 ‘스폰서’가 냈다. 그에게 정기적으로 술 접대를 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한 기업인은 <한겨레>와 만나 “그는 자신의 단골 술집을 지정해 그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제대로 마시면 비용이 300만~400만원에 이르는 고급 술집이었다. 검사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곳이라서 나도 그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버티기·되치기의 우병우 민정수석
‘정통 특수통’이라 불리긴 힘들어
에버랜드·노 대통령 수사 등 관여
심한 모멸감 주는 수사스타일 입길
진경준, MB 사위와 절친관계로 유명
괘씸죄 걸렸다가 우 수석 덕에 회생
검찰 내 ‘금융통’ 꼽히던 김형준
장인 박희태 영향인지 정치권 기웃
김 부장검사는 최근 검찰 수사로 예금보험공사 본부장을 그만두기 전까지 거의 매일 저녁 약속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검찰 선후배를 비롯한 법조인과 기업인들이 많았지만 정치인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진경준 전 검사장과 단골 술집에서 술을 마신 적도 있다고 한다. 또 지인들에게 우병우 수석과의 친분을 과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장인의 영향을 받은 듯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술자리에서 내게 자신이 총선에 나가면 승산이 있는지, 어느 지역구가 유리한지 등을 자주 물어봤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유엔 법무협력관 파견 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맺은 인연으로 반 총장의 대권 도전 여부에도 상당한 관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을 하고 있다. 뒤쪽에 우병우 민정수석. 2016.8.2. 청와대사진공동취재단. 한겨레
국감장 놀라게 한 김형준의 ‘본립도생’
그는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전두환 추징금 특별환수팀장 자격으로 나왔던 2013년 국정감사장에서 그가 꺼낸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는 말은 지금도 검찰 간부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본립도생은 ‘법과 원칙의 기본을 세워 길을 만든다’는 뜻으로 공자의 제자인 유자가 한 말이다. 당시 김 부장검사는 전 전 대통령의 숨겨진 재산을 찾아내 환수하는 등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 이 말을 썼다. 하지만 당시 국정감사장은 ‘국정원 수사 외압’ 논란이 불거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한 검찰 고위간부들이 매우 침통해하는 분위기였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초상집 분위기였는데 그 와중에 김 부장검사가 자기 자랑을 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김 부장검사도 지난해 증권범죄합수단장을 맡아 ‘여의도 저승사자’라고 불릴 정도로 강직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교 동창 스폰서 등에게 뇌물성 접대를 받아 검찰에 구속될 위기에 놓였다. ‘금수저’ 검사로 혜택을 본 만큼 검찰 조직을 위해 봉사해야 했지만 오히려 조직을 위기에 빠뜨렸다.
우병우, 진경준, 김형준 ‘세 검사’의 가장 큰 잘못은 검찰을 ‘출세만능주의 집단’으로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공익의 대변자’와는 거리가 먼 사익 추구 집단으로 말이다. 일선 검사들은 더 이상 정의와 인권을 입에 담지 못하게 될까 두렵다.
이춘재 서영지 기자
c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