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12월23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하일성 사무총장이 KBO 이사회 회의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이동원기자 dwlee@newsis.com
유명 프로야구 해설가 하일성(67)씨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8일 서울 송파경찰서는 하씨가 이날 오전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삼전동 스카이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사무실에 출근한 직원으로부터 ‘하씨가 목을 맨 상태’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경찰이 도착했을 땐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주변 증언과 경찰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하씨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 둔촌동 중앙보훈병원에 마련된 하씨의 빈소에서 <한겨레>와 만난 하씨의 지인 김학철(58)씨는 “하일성씨가 건물 사기 당해서 전재산 날리고, 아내 소유인 양평 전원주택이 압류됐다. 방송이나 광고를 못 해서 돈이 나올 데가 없었다”며 “최근에 악재가 겹쳐서 굉장히 힘들어 했다. 일주일 전에 만나서 술을 마셨는데 ‘죽고싶다’는 말을 엄청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달 말 하씨에게서 온 “3천만원을 빌려달라”는 문자를 보여주며, 하씨가 그에게 “내가 예전엔 재산도 있고 평판도 나쁘지 않았는데, (요즘엔) 내가 돈을 빌리고 하니 사람들이 안 만나줘서 무척 자존심이 상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에 시가 100억 상당의 빌딩을 소유한 재력가로 알려진 하씨는 지난해부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하씨가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을 때 소속사가 발표한 해명자료를 보면, 지인에게 빌딩을 팔려다가 사기를 당해 건물 판매 대금 100억원을 전혀 받지 못했다. 오히려 10억원 가량의 양도세 등을 내지 못해 체납자 신세가 됐다. 하씨는 이중 6억원을 납부했고 부족한 4억원은 사채로 해결하려다 불법추심에 시달려왔다. 당시 소속사는 “살던 집도 팔고 월세로 옮겼으며, 사용하던 외제차도 매각해 렌터카로 바꿨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경찰서 관계자는 “부인이 ‘경제적으로 힘들고, 최근에 여러 불미스런 일들이 보도돼 명예가 실추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하씨가 전날 밤 12시께 술에 취한 듯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 진술을 확보했다.
하씨는 목을 매기 전 ‘사랑한다’, ‘미안하다’ 등의 문자메시지를 작성해 부인에게 전송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부인에게 전송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하씨의 지인 김씨는 “아내 소유의 전원주택이 압류돼 하씨가 아내에게 엄청 미안해했다”고 말했다.
하씨는 지난해 11월 지인 박아무개(44)씨에게 “강남 빌딩에 부과된 체납 세금을 내야 한다”며 3000만원을 빌렸다가 갚지 않은 혐의(사기)로 입건되기도 했다. 검찰은 하씨가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이후 3000만원을 모두 갚았다는 점을 감안해 지난 2월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지난 7월엔 프로야구단 입단 청탁 명목으로 5000만원을 받은 혐의(사기 등)로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하씨가 ‘청탁용으로 받은 돈이 아니라 빌린 돈’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고 말했다.
하씨는 한국프로야구가 시작된 1982년부터 <한국방송>(KBS)에서 야구해설을 해온 한국의 대표적인 야구해설가다. 2002년 심근 경색을 이겨낸 하씨는 2006년까지 24년간 한국 최고의 야구해설위원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한국야구대표팀이 금메달을 딴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준우승했던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국가대표 단장을 맡기도 했다.
김지훈 이재욱 이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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