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린 KBO 이사회에 참석한 당시 하일성 사무총장. 연합뉴스
8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숨진채로 발견된 하일성(67)씨는 구수한 입담으로 1980~90년대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시청자들을 사로잡던 대표적인 야구 해설위원이었다.
하씨는 서울 성동고 재학시절 야구를 시작해 1967년 경희대 체육학과에 야구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선수생활은 길지 않았다. 그는 생전에 “고된 훈련과 단체생활이 맞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학 졸업 뒤 체육교사로 일했던 하일성씨는 1979년 당시 배구 해설위원이던 오관영씨의 권유로 동양방송(TBC) 야구해설을 맡으면서 새 인생을 시작했다. 동양방송이 한국방송공사에 통폐합되면서 한국방송으로 자리를 옮긴 하씨는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시작되며 빛을 발했다. “야구는 몰라요.” “역으로 가나요?” 등 유행어를 남기며 대표적인 야구해설가로 이름을 떨쳤다. 가족오락관, 아침마당 등 방송 오락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2002년 심근 경색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 하일성씨는 2006년 14년 동안의 해설위원 생활을 접었다. 대신 제11대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에 선임되며 야구계의 중심에 섰다.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야구가 금메달을 딸 때, 2009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을 달성할 때 국가대표 단장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하씨는 당시 한 인터뷰에서 “제 묘비명에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야구대표팀 단장'이라고 써달라”고 감회를 밝혔다.
2009년 한국야구위원회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하일성씨는 2010년부터 <케이비에스 엔> 해설위원을 맡았으나 2014 시즌을 끝으로 하차했다. 그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담은 ‘야구 몰라요, 인생 몰라요’ ‘파워 야구교본’ 등 많은 저서를 남겼고, 대기업 신입사원 강연 등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하씨가 ‘법적 문제에 휘말린데서 오는 부담감’과 ‘경제적인 곤란함’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니냐고 추측한다. 지난 7월 부산지검 형사4부(부장 김정호)는 프로야구단 입단 청탁 명목으로 5천만원을 받은 혐의(사기 등)로 하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하씨는 이를 빌린 돈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지난해 11월에는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지인 박아무개(44)씨에게 “강남 빌딩에 부과된 체납 세금을 내야 한다”며 3000만원을 빌렸다가 이를 갚지 못해 서울동부지검에 기소의견 송치되기도 했다. 검찰은 하씨가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이후 3000만원을 모두 갚아 지난 2월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기소유예) 했다. 이같은 사건들은 하씨가 돈 문제로 힘든 상황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황들이다.
하씨는 최근까지 서울 강남에 시가 100억 가량의 빌딩을 소유한 재력가로 외부에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하씨가 소속된 스카이엔터테인먼트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내용을 보면, 지인에게 빌딩을 팔려다가 사기를 당해 건물 판매 대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 오히려 10억원 가량의 양도세와 세급을 미납한 체납자 신세가 됐다. 하씨는 이중 6억원을 납부하고, 부족한 4억원은 사채를 끌어다 쓰느라 불법추심에 시달려왔다는 것이다. 당시 스카이엔터는 “살던 집도 팔고 월세로 옮겼으며, 사용하던 외제차도 매각해 렌터카로 바꿨다. 최선을 다해 채무를 변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경찰에서도 아직 그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까지는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에선 하씨가 아내에게 “사기 혐의로 피소당해서 억울하다. 사랑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경찰이 하씨의 휴대폰을 확인한 결과, “사랑한다”, “미안하다” 정도의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가 전송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을 뿐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 송파경찰서 담당자는 “재판 문제와 죽음이 관련이 있는지 살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지훈 이재욱 이찬영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