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아 기자의 베이비트리]
“찬솔아, 이렇게 장난감을 쭉 늘어놓고 놀지 말랬지! 이 장난감 갖고 놀았으면 정리한 다음 다른 장난감 갖고 노는 거야. 알았지?”
정연수(가명·42)씨가 거실에서 노는 5살 아들에게 한마디 했다. 아내 김유미(가명·40)씨는 그런 남편이 답답하다. 김씨는 “아이가 이 장난감 저 장난감 가지고 놀 수 있지 않냐”며 “남편이 융통성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결혼한 지 8년째인 부부는 최근 아이 문제로 많이 다툰다. 지난 8월 말, 김씨 가족은 집 근처 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공원에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찬솔이는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졸랐다. 무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던 김씨는 남편에게 “찬솔이도 먹고 싶어하는데 아이스크림 먹을까?”라고 말했다. 남편 정씨는 “감기 기운 있는데 애한테 아이스크림 먹이려고? 아이스크림 녹으면 옷에 흘릴 수 있고…. 조금만 참고 식당 가서 점심 먹자”고 말했다. 김씨는 남편의 말에 “이 더운 날씨에 아이스크림도 못 먹느냐”며 소리를 질렀고, 가족 나들이는 부부싸움으로 끝이 났다.
양육관 차이로 다툰다지만
서로 자존심 힘겨루기 아이 위해서라는 핑계로
배우자 통제하고 이기려 해 모처럼 가족나들이도
아이스크림 하나로 소리 ‘꽥’ 서로 달라서 되레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 줄 수도 있는데… 결혼 만족도 아이 태어난 뒤 급감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이런 일들은 종종 발생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부는 강한 결속력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처럼 아이 문제로 부부싸움이 잦아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이 때문에 결혼생활이 유지된다고 믿지만, 사실은 아이라는 존재는 결혼생활을 위협하고 이혼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미국 정신과 전문의이자 저명한 가족치료 전문가인 존 제이컵스 박사도 그의 저서 <결혼에 관한 7가지 거짓말>에서 이런 점을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결혼에 대한 종단연구를 보면, 부부의 결혼 만족도는 첫째 아이가 태어난 뒤 급격하게 떨어진다. 재혼한 부부는 아이 때문에 다시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부부는 자녀 양육이 18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정서적·육체적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무방비 상태로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다. 게다가 현대사회에서는 과거보다 낭만적 사랑과 행복감을 결혼생활에서 매우 중시하게 되면서 과거보다 결혼생활의 구조는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고 존 제이컵스는 짚는다. 이렇게 위태롭고 취약한 결혼생활 속에서 자녀 양육 문제로 인한 부부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상담 전문가인 이성아 자람가족학교 대표는 “부부가 서로 양육관이 달라 문제라고 생각하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부는 결혼 전까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다. 서로 다른 신념, 라이프스타일, 가치관 등을 가진 원가족 속에서 컸고, 결혼하더라도 원가족의 영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다르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인데, 다르다며 힘들어한다. 이 대표는 “서로 달라서 오히려 아이에게 좀 더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그 부분은 간과한다”고 말한다. 위의 사례를 보자. 남편 정씨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가 바깥에 나가 음식이 옷에 묻을까봐 무서워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아내 역시 아이가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은 반드시 먹어야 하고, 음식물을 옷에 흘리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것은 아니다. 부부가 진짜 바라는 것은 아이가 바깥에 나가서 음식도 맛있게 잘 먹고, 자신의 욕구를 참아야 할 땐 잘 참고, 음식물을 흘리지 않는 아이로 자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남편과 아내가 원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고, 서로 보완적인 경우가 많다”며 “상담 온 부부들에게 그들이 가진 비합리적 신념을 걷어내도록 하고, 서로의 말을 통역해주면 갈등이 풀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이 대표는 양육관 차이로 싸운다는 부부를 보면 대개는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고 전한다. 부부는 아이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아이 문제를 가장해 배우자를 이기려 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내 욕구 때문에 배우자를 비난하고 싶을 때가 있죠. 그런데 그게 가장 마이너스예요. 비난하는 순간 내 통장에서 1천만원이 쑥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면 돼요. 누구든지 상대방이 나를 비난하면 자기방어적으로 나옵니다.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서로 힘들게 되는 것이죠.”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키우느냐를 놓고 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는 동안 가장 큰 희생자는 결국 아이가 된다.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최근 21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고 썼다. 그는 “결혼이란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도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있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큼 아는 게 없을 수 있다. 양육관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내가 상대방을 지나치게 공격하거나 비난하고 있지 않은지, 내가 상대방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지 않은지, 이번 기회에 점검해보면 어떨까?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서로 자존심 힘겨루기 아이 위해서라는 핑계로
배우자 통제하고 이기려 해 모처럼 가족나들이도
아이스크림 하나로 소리 ‘꽥’ 서로 달라서 되레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 줄 수도 있는데… 결혼 만족도 아이 태어난 뒤 급감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이런 일들은 종종 발생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부는 강한 결속력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처럼 아이 문제로 부부싸움이 잦아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이 때문에 결혼생활이 유지된다고 믿지만, 사실은 아이라는 존재는 결혼생활을 위협하고 이혼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미국 정신과 전문의이자 저명한 가족치료 전문가인 존 제이컵스 박사도 그의 저서 <결혼에 관한 7가지 거짓말>에서 이런 점을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결혼에 대한 종단연구를 보면, 부부의 결혼 만족도는 첫째 아이가 태어난 뒤 급격하게 떨어진다. 재혼한 부부는 아이 때문에 다시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부부는 자녀 양육이 18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정서적·육체적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무방비 상태로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다. 게다가 현대사회에서는 과거보다 낭만적 사랑과 행복감을 결혼생활에서 매우 중시하게 되면서 과거보다 결혼생활의 구조는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고 존 제이컵스는 짚는다. 이렇게 위태롭고 취약한 결혼생활 속에서 자녀 양육 문제로 인한 부부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상담 전문가인 이성아 자람가족학교 대표는 “부부가 서로 양육관이 달라 문제라고 생각하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부는 결혼 전까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다. 서로 다른 신념, 라이프스타일, 가치관 등을 가진 원가족 속에서 컸고, 결혼하더라도 원가족의 영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다르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인데, 다르다며 힘들어한다. 이 대표는 “서로 달라서 오히려 아이에게 좀 더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그 부분은 간과한다”고 말한다. 위의 사례를 보자. 남편 정씨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가 바깥에 나가 음식이 옷에 묻을까봐 무서워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아내 역시 아이가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은 반드시 먹어야 하고, 음식물을 옷에 흘리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것은 아니다. 부부가 진짜 바라는 것은 아이가 바깥에 나가서 음식도 맛있게 잘 먹고, 자신의 욕구를 참아야 할 땐 잘 참고, 음식물을 흘리지 않는 아이로 자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남편과 아내가 원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고, 서로 보완적인 경우가 많다”며 “상담 온 부부들에게 그들이 가진 비합리적 신념을 걷어내도록 하고, 서로의 말을 통역해주면 갈등이 풀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부부의 상호보완을 위한 질문들
부부 치료 전문가들은 ‘가족 업무’와 관련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업무 목록을 구체적으로 만들고, 역할과 책임의 공정성에 대해 부부가 충분히 대화하고 토론하라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이 부부의 상호보완을 위해 하는 질문을 <결혼에 관한 7가지 거짓말>을 참고해 살펴본다.
1. 누가 더 잘 하는가?
2. 교대할 수 있는가?
3. 그 일을 하는데 누가 덜 불편할까?
4. 누가 그 일을 더 많이 하는가?
5. 당신이 스스로 꾸려 갈 수 있는가?
6. 아이들이 도와줄 수 있는가?
7. 입장을 바꿔 볼 수 있는가?
8. 당신의 기준을 완전히 없애거나 낮출 수 있나?
9.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10. 배우자가 자기 방식대로 하는 동안 조용히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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