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지난해 10월 유우성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직후, 유씨가 대법원 법정을 나서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국정원 직원 증거 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36)씨가 대북 송금 사건 2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감형받았다. 검찰이 4년 전에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한 유씨의 외국환거래법위반 혐의를 다시 꺼내 기소한 것은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위법하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유씨가 국정원 직원들의 증거 조작을 고소하자, 이에 맞대응해 검찰이 보복성 기소를 했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윤준)는 1일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유씨의 항소심에서 “외국환거래법 위반 부분에 대해선 공소기각하고,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부분은 원심의 판단을 유지한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외국환거래법 위반 부분을 공소기각하면서 “검사가 현재 사건을 기소한 것은 통상적이거나 적정한 소추재량권 행사라고 보기 어려운바, 어떠한 의도가 있다고 보여지므로 공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평가함이 상당하다”며 검찰을 비판했다.
유씨는 탈북자들의 대북송금을 주선해주는 일명 ‘프로돈’ 사업을 통해 13여억원을 북한으로 밀반출한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로 2014년 5월 기소됐다. 또 국적을 속여 우리나라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고 탈북자 정착금을 부당하게 받은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도 받았다.
2009년 9월 이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동부지검은 “유씨가 초범이고 예금계좌를 빌려준 것으로 가담 정도가 경미하며, 범행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면서 이듬해 3월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피의자가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 범행 정도가 경미하거나 초범이면 재판에 넘기지 않는 기소유예 처분을 한다.
그러나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이두봉)는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진지 4년만인 2014년 유씨를 같은 혐의로 기소한다. 유씨와 그를 변호했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장경욱 변호사 등이 ‘국정원 직원들이 유씨의 출입경 기록을 위조했다’는 사실을 중국 당국의 확인을 거쳐 밝혀내고 이들과 담당검사를 고소한 직후였다. 검찰에선 “과거 기소유예한 사안이지만 유씨가 대북 송금에 직접 가담한 정황이 이번에 추가로 나왔다. 기소유예 당시보다 금액이 5000만원 정도 늘었다”며 보수단체 대표의 고발을 받아들여 유씨를 기소한 것이다. 이에 당시 변호인이었던 김용민 민변 변호사는 “검찰은 간첩 사건 증거조작이 밝혀지자 갑자기 과거 기소유예 처분했던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보복성 기소이고 공소권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배심원 7명 중 4명이 ‘검찰의 공소권 남용’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재판장 유남근)는 “검찰의 공소권 남용이 아니다”라며 배심원들과 다른 결론을 내렸다. 1심 재판부는 “검사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가 시효 만료 전에 기소했다고 해도 기초 사실이 바뀌어 기소할 필요성이 발생했다면 자의적인 기소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유씨에게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위계공무집행방해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외국환거래법 위반을 기소한 것은 검찰의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종전 사건의 피의사실과 현재 공소사실 사이에 새로 공소를 제기할만한 의미있는 사정의 변경이 없다”며 “유씨에 대한 새로운 고발은 검찰사무규칙에 따라 각하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로 인하여 유씨가 실질적인 불이익을 받았음이 명백하므로 현재 사건에 대한 기소는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앞서 유씨는 국가보안법상 간첩 등 혐의로 기소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서 간첩, 특수잠입 탈출, 편의제공 등 모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다만 중국 국적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북한이탈주민인 것처럼 정부를 속여 불법지원금을 받고 대한민국 여권까지 발급받았다는 혐의(북한이탈주민보호법 위반 등)에 대해서는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565만원이 확정됐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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