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2012년 12월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법원에 선고 공판을 받기위해 휠체어를 타고 들어서고 있다. 김경호기자 jijae@hani.co.kr
대법원이 이호진(54) 전 태광그룹 회장의 1400억대 횡령, 배임 및 조세포탈 사건에서, 태광산업의 세금 납부 의무를 입증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놨다. 이 전 회장에게 징역 4년6월을 선고했던 원심 판결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30일 횡령, 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호진(54) 전 태광그룹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서 원심의 잘못을 바로 잡아 태광산업의 부가가치세와 법인세 포탈 부분을 논리적 모순이 없이 입증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 전 회장은 계열사인 태광산업의 스판덱스 등 섬유제품을 실제 생산량보다 적게 생산된 것처럼 조작하거나 불량품을 폐기한 것처럼 꾸미는 방식으로 빼돌려 판매한 뒤 세금계산서를 남기지 않는 ‘무자료 거래'를 통해 196억원가량을 횡령한 혐의(업무상 횡령) 등이 2심에서 유죄로 인정됐다.
대법원은 서울고법의 원심처럼 이 전 회장이 태광산업의 ‘섬유제품’을 횡령했다고 보면, 횡령한 섬유제품을 판매한 것은 태광산업이 아니라 이 전 회장의 개인적 거래가 된다고 봤다. 이렇게 되면 태광산업은 부가가치세를 납부할 의무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전 회장이 섬유제품의 ‘판매대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봤다. 이 전 회장이 섬유제품 자체를 가지려고 무자료 거래를 한 것이 아니라, 섬유제품의 판매대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횡령하려는 목적으로 무자료 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태광산업이 법상 ‘재화를 공급한 것’이 돼 부가가치세와 법인세 납부 의무가 발생한다고 판결했다.
이 전 회장 등은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는 무자료 거래, 허위 회계처리를 통한 비자금 조성 등으로 회사 돈 530여억원을 빼돌리고, 손자회사의 주식을 자신과 아들에게 헐값으로 넘기는 등 그룹에 950여억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로 2011년1월 구속기소됐다.
1심은 2012년 이 전 회장에게 징역 4년6월, 벌금 20억원을 선고했다. 같은해 2심에선 대한화섬 관련 비자금 조성 혐의를 범죄사실에서 제외해 이 전 회장에 대해선 벌금만 10억원으로 낮췄다. 이 전 회장은 간암 판정을 받아 2011년 3월부터 구속집행이 정지돼 63일간만 수감 생활을 했다. 2012년 6월부터는 병보석을 허가받아 간암 3기인 상태에서 서울아산병원과 자택만을 오가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대법 판결은 세부적인 법논리를 다듬은 것이기 때문에 파기환송심에서도 이 전 회장에게 내려진 형량은 거의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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