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임신순번제’ 등 의료기관 내 여성종사자들의 인권침해와 관련해 정부에 개선을 권고하기로 했다. 임신순번제는 의료기관 내 여성종사자들 사이에 순서를 정해서 임신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인권위는 25일 상임위원회를 열어 ‘보건의료 분야 여성종사자 인권 증진을 위한 정책 권고의 건’을 의결했다고 29일 밝혔다. 인권위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의료기관이 여성종사자의 모성을 보호하는 제도를 준수하는지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필요한 경우엔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하기로 했다. 보건의료 분야 종사자의 성차별적 인식을 개선하고 양성평등 수준을 제고하기 위해 의료인 보수교육에 인권교육을 넣는 방안도 제시됐다.
인권위는 지난해 5월∼10월 전국 12개 병원의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전공의 등 1130명을 대상으로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벌였다. 이 조사에서 ‘본인이 원하는 시기에 자유로운 임신을 결정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간호사·간호조무사 39.5%, 전공의 71.4%가 각각 ‘그렇지 못하다’고 응답했다. 또 임신순번제를 어겨 임신하면 동료들로부터 비난받고, 그런 비난이 두려워 임신 사실을 숨긴 채 일하다 유산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상임위에서는 임신순번제 등을 근절할 방안으로 대체인력 지원 활성화가 권고안의 일부로 고려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안으로 나온 ‘시간선택제 일자리’ 등은 비정규직 양산 문제를 낳을 수 있는데다 의료업계 특성상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인력이 투입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권고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상임위는 또 의료기관 내에서 벌어지는 광범위한 여성종사자 인권침해를 막기위해 '폭력·성희롱 예방관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의료기관에 배포하게 하는 방안도 권고안에 담기로 했다. 인권위의 권고안은 보름에서 한 달 이내 인권위 내부 심의를 거친 다음 관계 부처에 전달될 예정이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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