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 한겨레 자료 사진.
롯데그룹의 ‘2인자’로 알려진 이인원(69) 부회장이 검찰 소환을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을 두고 검찰 안팎에서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단 검찰 조사를 받기 전에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검찰의 강압수사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유서에서도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개인 비리는 포착된 것이 없었다”고 밝혀, 자신의 개인 비리가 드러날 것이 두려워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 부회장이 그룹의 2인자로서 자신이 알고 있는 그룹의 비밀을 수사팀에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주 일가를 보호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는 43년간 롯데에서 일하며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고, 90여개의 그룹 계열사를 총괄하는 정책본부의 수장이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롯데건설 비자금 300억원 조성 등의 과정에 상당 수준 관여한 것으로 판단하고, 횡령?배임 혐의로 조사할 계획이었다.
그는 유서에서도 “롯데그룹에 비자금은 없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먼저 가서 미안하다”라고 쓴 것으로 알려져 마지막 순간까지 회사의 결백을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오너 일가에 대한 언급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박형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 임원의 경우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회사의 비밀이 알려지는 것을 막고 회사를 지키고자 하는 심리가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 부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고, 신 총괄회장이 고령에 따른 치매 증상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배경이 작용했다는 말도 나온다. 검찰 수사를 받는 것 자체에서 오는 모멸감과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번 수사가 처음부터 오너 일가를 겨누고 있음을 공공연하게 밝히면서도 다른 임원들에 대한 ‘싹쓸이식’ 수사로 수사에 대한 피로감을 지나치게 키웠다는 것이다. 롯데 사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웬만한 임원들은 검찰에 의해 출국금지되거나, 수사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휴대전화 사용에 제약을 받는 등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의 죽음은 이런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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