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불합리한 차별” 시정권고
복지부 “미래 인적자원 여부 불투명” 거부
“보육료 미지급은 유엔 아동협약 위반” 지적
복지부 “미래 인적자원 여부 불투명” 거부
“보육료 미지급은 유엔 아동협약 위반” 지적
오아무개(76)씨는 2010년 일본에서 태어난 외손자를 국내에서 3년 넘게 돌보고 있다. 외손자는 지난해 초 한국 국적과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았다. 외손자를 어린이집에 보냈더니 다른 나라의 영주권이 있는 ‘재외국민’이라는 이유로 무상보육에 따른 보육료 지원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오씨는 지난해 “대한민국 국적과 주민등록번호가 있음에도 보육료 지원에서 배제되는 것은 부당하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오씨의 진정 사건에 대해 “국내 거주 재외국민 유아를 보육료 지원대상에서 배제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현행 영유아보육법과 유아교육법상 보육료와 유아 학비 지원 대상에 재외국민을 제외한다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는 점, 또 보육료와 유아 학비는 보호자의 소득수준이나 재산과는 무관하게 유아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이용하거나 출석하는 것을 근거로 지원된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인권위는 평등권이 침해됐다고 보고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관에게 재외국민 유아도 지원 대상에 포함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두 기관은 권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최근 인권위에 밝혔다.
먼저 복지부는 “주민등록번호는 보육료를 지원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적 방법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보유했다고 해서 곧바로 보육료 지원 대상으로 편입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보육료 지원은 국가의 미래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로서 국가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데, 국내 영주 거주 의사가 불분명한 재외국민에게까지 확대 지급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 및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교육부 역시 “주무 부처인 복지부가 재외국민 수급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데다 재외국민 유아 학비를 지원하면 유사한 복지서비스간 지원 대상이 달라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정부의 설명처럼 보육비 등이 국가의 미래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이고 유아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의 실현이라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고 국내에 거주하는 유아에게도 평등하게 시행되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재외국민 유아가 국내에 계속 거주하는데도 보육·교육 혜택에서 배제하는 것은 유엔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명시된 의무도 거스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와 교육부가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데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아동인권위원회 김영주 변호사는 “미래 재원에 대한 투자로 보육료를 지급한다는 정부가 재외국민 유아에게 보육료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면서 “국제 기준에 비춰 인권위가 내린 권고를 정부가 수용하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재외국민 유아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이 이어질 것이 우려된다”며 복지부와 교육부의 권고 불수용 사실을 23일 공표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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