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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광복절 특사, 이 사람도 낀다고?

등록 2016-08-09 10:44수정 2016-08-09 10:55

[밥&법] 대통령 특사 예상 회장님들 자격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특사’가 임박했습니다. ‘재계 회장님’들이 대거 포함될 전망인데, 누가 대통령의 은전을 받을지 재계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기업인에 대해 ‘절제된 사면’을 공언해왔습니다. 나름의 기준과 원칙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는 재벌 총수들의 ‘사면의 자격’을 하나하나 따져봤습니다.

“저희 회장님이 명단에 있을까요?”

요즘 재계의 홍보 업무 담당자들의 관심사는 온통 ‘광복절 특사’에 꽂혀 있다. 특별사면 명단에 ‘우리 회장님’이 포함됐는지, 기대 반 우려 반의 치열한 정보전이 한창이다. 올해 사면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인 사면’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금 우리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이 많고 국민의 삶의 무게가 무겁다.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전기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나흘 전 새누리당 의원들이 청와대 오찬에서 대통령에게 특별사면을 건의한 데 대한 화답이었다. ‘경제가 어렵다’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재계는 잇따라 환영 논평을 내놓으며 특별사면 확대 분위기를 조성해왔다. 횡령, 배임 등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종료된 뒤 2년, 징역형 집행이 종료되고 5년까지는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 경영 일선으로 복귀하려는 재벌 총수로선, 형의 선고 효력 자체를 ‘없던 일’로 사해주는 사면복권이 절실한 것이다.

정부 지난해 마련한 기준 보면
6개월 내 형 확정된 자나
형 집행률 부족한 자 등은 배제

국회 의사국 10명 예상명단 작성
4명 재판 진행중이라 대상 안돼
현재현·이재현 형 집행률 낮고
김승연은 이미 두번 혜택 받아

유전무죄 논란 없는 특사 될까

올해 ‘광복절 특사’ 대상을 심사하는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는 9일 오후에 열린다. 비공개로 진행되는 사면심사위원회를 거쳐 법무부 장관이 최종 명단을 대통령에게 상신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사면심사위원회 일정이 잡혔다는 건 ‘청와대 명단’이 사실상 확정됐다는 얘기다. 청와대 비서실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야당 의원은 “여론 추이에 따라 막판에 한두 명이 빠지거나 포함될 수 있지만, 사면 규모와 명단은 이미 (청와대에서) 내려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특별사면은 박근혜 정부 들어 세 번째인데, 박 대통령은 사면 대상에 기업인을 대거 포함한 적이 없었다. 주요 그룹 총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이 지난해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았다.

기업인에 대한 ‘사면 대박’ 분위기는 여의도에서도 감지된다. 국회 의사국에서 지난달 작성한 ‘특별사면 대상자 예상 명단’을 보면, 재벌 총수만 10명이 이름을 올렸다. 정치인은 4명뿐이다. 국회 의사국에선 이 명단을 “정부와 협의 없이 내부 보고용으로 언론 기사를 참고해 정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실제 이 명단에는 각종 비리행위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재벌 총수들이 총망라돼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인 특별사면’의 기준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지난해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을 발표하면서 경제인의 경우 △최근 6개월 내 형이 확정된 자 △형 집행률이 부족한 자 △현 정부 출범 이후 범행한 비리사범 △벌금·추징금 미납자 △뇌물범죄·안전범죄 등은 사면 대상에서 배제하겠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국회 의사국이 예상한 특사 대상 재벌 총수 10명 중에 ‘사면의 자격’을 충족하는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우선, 형이 확정되지 않았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4명은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다. 의사국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들 중에 강덕수 전 에스티엑스(STX)그룹 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등 3명은 현재 대법원에서 상고심이 진행되고 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최대 관심은 이재현 씨제이(CJ)그룹 회장이다. 이재현 회장은 광복절 특사를 한 달여 앞둔 지난달 19일 대법원 재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씨제이그룹은 광복절 특사를 받기 위한 ‘배수진’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현재 구속집행정지 상태로 서울대병원에서 신경근육계 유전병과 만성신부전증 등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씨제이그룹 쪽은 재상고 포기를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이 회장의 손발이 굽은 사진과 함께 “내가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 살고 싶다”는 등의 이 회장 발언을 언론에 공개하며 동정 여론을 자극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경우 박근혜 정부가 밝힌 사면 제외 대상 기준 중에서 △최근 6개월 내 형이 확정된 자 △형 집행률이 부족한 자에 모두 해당한다. 이 회장은 2013년 7월 횡령·배임·조세포탈 혐의로 구속 기소됐지만, 치료 때문에 구속집행정지를 10차례 연장해 징역 2년6월 중 실제 수감 기간은 채 4개월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미 이 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제12형사부(재판장 이원형)는 징역 2년6월을 선고하면서, 이 회장이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사실과 건강 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해 양형 기준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재벌 총수들이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면, 복권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관계자는 “병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형집행정지 사유로 인정될 수 있을지 몰라도, 원천적으로 형의 선고를 면해주는 특별사면의 사유는 될 수 없다”며 “이 회장은 이미 형집행정지 상태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고, 필요하다면 검찰의 허가를 얻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국외 치료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살기 위해 사면을 해달라’고 읍소하면서도 정작 그룹 회장직 등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진정성이 아쉽다”고 꼬집었다.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도 형 집행률이 낮은 경우에 해당한다. 현 회장은 징역 7년을 선고받고 2년8개월을 복역해 형기의 3분의 1을 겨우 넘긴 상태다. 현 전 회장이 사기성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발행한 시기는 2013년 2~9월로,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비리사범’이라는 기준에도 걸리는 셈이다. 현 전 회장은 동양그룹 기업어음과 회사채 1조3천억원어치를 사기 발행해 피해자 4만여명을 양산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무엇보다 범죄 피해가 지금까지도 온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다. 통상 법원이 양형 감경 사유로 제시하는 ‘범죄 피해의 회복’조차 충족하지 못한 상태라 만약 사면이 된다면 피해 당사자들의 반발 또한 거셀 수밖에 없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은 전직 임원들이 새로운 범죄 의혹을 제기하며 사면에 반대하는 상황이다. 지난 2일 전직 오리온그룹 고위 임원들은 담 회장에 대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횡령, 배임 혐의와 함께 직원들에게 위증을 시켰다는 의혹을 새롭게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은 청와대와 법무부에 담 회장의 특별사면을 반대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넣은 상태다. 진정서에서 전 계열사 임원들은 “담 회장의 범죄는 기업을 살리기 위한 피치 못할 선택에 의한 것도, 기업의 발전을 위해 할 수밖에 없었던 범죄가 아니라 개인과 가족의 재산 축적을 위한 범죄”라며 “만약 담 회장이 사면복권된다면 사회 통합과 어려운 경제 활성화를 통해 민생경제를 살리려는 진정한 사면복권의 의미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담 회장은 300억원대 횡령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2013년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해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과 함께 사면 대상으로 거론됐으나 막판에 고배를 마셨다. 당시에도 김승연 회장은 이미 두 차례 특별사면을 받은 전력 때문에 사면을 받지 못했다는 해석이 많았다. 김 회장의 1993년 외환관리법 위반 사건은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이, 2007년 술집 종업원 보복폭행 사건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사면을 해줬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세 차례 특별사면을 받은 경우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두 사람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고 성완종 회장이 노무현 정부 때 두 차례 특사를 받은 사실을 거론하며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청와대 입장에선, 특별사면 ‘재수생’을 또다시 대상에 포함하기엔 여론의 부담이 적지 않은 셈이다. 최재원 에스케이그룹 수석부회장과 구본상 전 엘아이지(LIG)넥스원 부회장은 그룹 총수가 아니다. 이들이 ‘국가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이유로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시 한 번 기회를 줬다’는 논리를 펴기엔 다소 민망하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사면에 부정적인 인식을 보여왔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여러 차례 “사면권을 남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돈 있고 힘 있으면 책임을 안 져도 되는 일이 만연한 풍토에서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해도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 여론도 다르지 않다. 라디오방송 <시비에스>(CBS)가 지난달 광복절 특사에 기업인을 포함하는 문제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유전무죄 논란으로 법치주의를 훼손하므로 반대한다’는 의견이 60.6%로, ‘경제위기 극복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므로 찬성한다’는 의견(27.8%)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 사면은 잘못 만들어진 법이나 잘못된 판결 등 입법과 사법의 오류를 시정하기 위해서나, 양심수 석방 등 사회갈등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매우 예외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진보·보수 정권 가릴 것 없이 역대 정권들은 실증적 증거도 없이 경제 살리기를 구실로 부패 경제인에 대한 사면권을 남용해 법치주의를 훼손해왔다”고 지적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밥&법’은 법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과 현장을 찾아갑니다. 조각난 퍼즐을 맞춰 사건의 이면을 파헤칩니다. 알송달쏭 사건 판례를 살펴보는 ‘판결 체크’와 민생·인권·공익 변호사들이 들려주는 법 이야기 ‘동네변호사가 간다’가 독자들과 만납니다. 법이 바꾼 일상을 들여다보는 연재물 ‘한 문장이 바꾼 세상’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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