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예은이가 지난 27일 오후 경기 고양 국립암센터에서 짧은 머리카락을 가리기 위해 쓴 빨간색 모자를 두 손으로 잡고 있다. 고양/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예은(가명·9)이는 항암치료 받으면서 한번도 힘들다, 아프다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엄마가 속상할까봐 아픈 내색도 잘 안 해요. 그런 아이가…마취 풀릴 땐 (비몽사몽 상태에서) 속마음을 막 얘기해요. ‘엄마, 내가 아파서 미안해. 근데 나도 힘들어’라고요.”
지난 27일 경기도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만난 예은 엄마 김혜진(가명·40)씨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다 마른 줄 알았는데 또 나오네요.” 예은 엄마는 연신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예은이는 세 딸 중 막내다.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하는 활달한 성격에, 언니들보다 자기가 더 예쁘다며 외모에 자신감도 넘치는 아이다. 그런 예은이가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건 올해 1월이다. 열나고 기침을 하길래 겨울 감기인 줄 알고 동네 이비인후과를 다녔지만 차도가 없었다. 내과에서 피검사를 하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결과를 본 의사는 병명도 말해주지 않은 채 소견서를 써주며 큰 병원에 가볼 것을 권했다. “오늘은 둘째 애 치과를 데려가야 하니 내일 가보겠다”고 하자 의사는 당장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재촉했다. 집 근처 인천한림병원에 갔더니 이번에는 국립암센터로 갈 것을 권했다. “병명이 뭐냐고 물으니 좋은 경우 악성 빈혈, 최악의 경우 백혈병일 수 있대요. 좋아야 악성 빈혈이라니…. ‘오진 아니냐’고 물으며 그길로 당장 국립암센터 응급실로 달려갔어요.”
제발 아니길 바랐지만, 예은이는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백혈병은 혈액 세포 중 백혈구에 발생하는 암이다. 예은이 머리에 백혈병 세포가 있다고 했다. 즉각 무균실로 들어가 격리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면회사절’이란 팻말이 붙은 병실에서 생활하는 동안 엄마는 매일 울었다. “첫날 무균실 들어갈 때 문을 6개를 통과하더라고요. 예은이랑 단둘이 그렇게 있는 동안 ‘어쩌다 여기 이렇게 있어야 하나’ 싶어 밤마다 울었어요.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싶고….”
1차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예은이의 긴 머리카락은 윤기를 잃어 자꾸 엉키고 빠졌다. 결국 머리를 정리하러 미용실에 갔다. “묶은 머리를 잡고 가위로 숭덩 잘랐어요. 누더기 강아지 털 벗겨내듯 머리카락을 쓱 밀어내는데 예은이도 울고 저도 울고…긴 머리를 좋아하던 아이가 충격을 받았지요.”
무균실에 들어갈 때 걸어 들어갔던 예은이는 나올 땐 휠체어를 타야 했다. 근육이 다 빠진 터라 걷지를 못했다. 2차 항암치료 땐 약품 부작용이 왔다. 약을 바꿔야 한다는데 주사 한 대 값이 200만원이었다. 약은 돈을 먼저 내야 구할 수 있었다. 무균실 치료를 받으며 주사 9대를 맞았다. 병원비가 금세 몇천만원대로 불어났다.
예은이가 힘든 치료를 잘 견딘 덕에 회복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암세포가 뇌척수로 전이됐다는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들었다. 3~4일 치료받고 퇴원할 줄 알았다가 뇌척수액과 골수이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동종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해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인 두 딸을 데려와 조직적합성항원 검사를 받았다. 모두 불일치였다. 공여자를 찾아야 했다. 수술을 받으려면 피도 필요하다. 예은이의 혈액형은 희귀한 ‘아르에이치 마이너스 비(Rh-B)’형이다. 희귀혈액 사이트, 동호회 모임 등에 도움을 요청했다.
“공여자 검사비와 이식비용은 다 제 몫이에요. 맞는 사람을 찾을 때까지 검사비를 입금하고 결과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안 맞으면 또 다른 사람 검사비를 입금하고 기다리는 일을 반복해야 해요. 그런데 다행히도 예은이는 2번 만에 공여자를 찾았어요. 그분이 제발 이식 날까지 마음이 변치 않았으면 좋겠어요.”
예은이는 앞으로 항암치료를 한번 더 받고 이달 말에 동종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을 예정이다. 예은이의 담당의사인 박현진 국립암센터 소아암센터장은 “이식을 하고 나면 감염 등 문제가 많아 수술 뒤 3개월은 집중관찰이 필요하고, 적어도 5년 동안 재발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병원비다. 인천에서 작은 횟집을 운영하는 예은이 아빠는 설날과 추석 명절 하루씩밖에 쉬지 않고 매일 아침 8시 반에 나가 새벽 1시에 들어오며 열심히 일을 하지만 한달 소득이 200만원에 불과하다. 다섯 식구 생계비로도 턱없이 부족하다. 횟집은 계절을 타다 보니 여름인 지금은 수입이 더 줄었다.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예은이 병원비로 약 7000만원이 들었다. 한달 치료비가 1000만원꼴이다. 국가 암검진 및 암환자 의료비 지원사업 지원금과 민간 후원기관으로부터 받은 소정의 후원금은 없어진 지 오래다. 앞으로 골수구득료로만 690만원이 필요하고, 동종조혈모세포 이식에 최소 2000만원의 비용이 든다. 거기에 가게 운영비와 주거마련 대출금, 생계비, 치료비 마련을 위해 진 빚이 벌써 9000만원이다.
“치료비 2000만원과 약값 800만원, 공여자 비용 700만원 등을 생각만 해도 머리가 너무 복잡해요. 앞으로 예은이 상태에 따라 희귀약품이 더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 막막하죠. 백혈병 아이를 둔 엄마들이 ‘돈 없으면 죽겠어’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정말 힘들어요.”
다행히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근심을 아는지 다들 속이 깊다. 중학생인 큰아이는 백혈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컴퓨터를 찾아보며 혼자서 훌쩍훌쩍 울었다. 엄마가 병원에 있을 땐 둘째 동생의 아침밥을 빼놓지 않고 챙긴다. 둘째는 ‘예은이 바라기’다. 맛있는 게 생기면 집에 가져와 동생부터 챙겼다. 사춘기라 평소 까칠했던 큰언니가 친절해지자 예은이는 “엄마, 큰언니가 내가 아파서 그런지 친절해졌어”라며 웃었다.
아이유와 수지를 좋아하고, 아이돌 가수를 꿈꾸던 예은이는 푸르스름한 민머리를 창피해한다. 한번은 몸 컨디션이 좋아 놀이터에 나간 적이 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논다고 한껏 들떠 있었는데 그만 그네를 타다 가발이 훌렁 벗겨졌다. 예은이는 “친구들이 봤다”며 엄마 무릎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었다. 엄마는 “아픈 건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하며 예은이를 달랬다.
항암치료가 잠시 중단된 지금 예은이 머리카락은 4㎝가량 자랐다. 엄마는 그 머리가 밤톨처럼 예뻐서 자주 쓰다듬는다. 그래도 예은이는 남들 앞에서 모자를 잘 벗지 않는다. 이날 기자와 만나서도 예은이는 빨간 모자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채 자라난 머리를 좀체 보여주지 않았다. 약품 부작용으로 달처럼 부어오른 얼굴도 마스크로 가렸다. 핏기 없이 하얀 얼굴에서 보이는 건 쌍꺼풀 진 눈뿐이다. 외모에 자신 있어 하던 아이는 얼굴을 가려야 밖에 나온다.
반년 넘게 집과 병원만 오가는 생활을 하는 예은이는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로 놀이공원에 가는 걸 꼽았다. 어서 빨리 학교에도 가고 싶다. 아침마다 언니들이 등교 준비를 할 때마다 여간 부러운 게 아니다. 예은 엄마는 이 더운 여름날 감염 위험 때문에 수영장에 한번 가질 못하는 딸이 안타깝다. 목욕탕이라도 가봤으면 하는 게 엄마 마음이다.
활달한 성격으로 체육 수업을 좋아하는 예은이는 엄마에게 종종 묻는다. “엄마, 나 다시 달리기 할 수 있어?” 엄마는 대답한다. “그럼, 얼마든지.”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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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은양과 가족을 돕고 싶다면 계좌이체(KB국민은행 762301-04-198569, 예금주: (사)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를 해주세요. 예은양에게 필요한 돈은 치료비와 경제지원비 2000만원입니다. 모금액은 모두 예은양과 가족에게 쓰일 예정입니다. 작은 정성을 모으면 예은양의 치료와 더불어 가족이 함께 재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은양에게 또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사단법인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1544-1415)로 연락해 문의하시면 됩니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누리집(www.soaam.or.kr)에서도 배너를 클릭해 모금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김미영 기자
보도이후
<한겨레>와 ‘바보의나눔’이 함께한 ‘2016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해 소년보호 6호 시설인 효광원에 입소해 생활하고 있는 박진웅(16)군의 사연이 소개된 뒤, 297명이 후원에 동참해 모두 527만5000원(7월31일 기준)의 정성이 모였다. 바보의나눔은 “당초 모금 목표액(2500만원)의 약 25%가 모금됐다”며 “보호 청소년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이어 “진웅군과 조부모의 건강을 위해 영양제를 보내주신 약사와 효광원 퇴소 뒤 진웅군의 생활을 걱정하며 마음을 보내주신 분이 많아 감사드린다”고 전해왔다. 박군의 뜻에 따라 금액은 박군 조부모 치료비 지원과 생활비 등으로 사용된다. 목표액이 달성되지 못했지만, 바보의나눔을 통해 박군을 도울 기회는 여전히 열려 있다. 정기적인 후원으로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들은 바보의나눔(02-727-2506~8)에 연락해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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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