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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청소반장 엄마 육숙희씨에게 부끄럽지 않은 노래를…”

등록 2016-07-20 19:08수정 2016-07-20 20:59

[짬] 현장 찾아다니는 가수 사이
세월호유가족에게 싸이 같은 포크가수 사이.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세월호유가족에게 싸이 같은 포크가수 사이.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내가 부르는 노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요리로 치자면 냉동만두… 진짜로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는/ …부산 해운대 리베라백화점 청소하시는/ 육숙희씨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노래”(‘냉동만두’ 가사)

해 질 무렵 하늘이 붉게 물든 시간, 턱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우쿨렐레와 카주를 익살스럽게 연주하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촉구하며 정부서울청사 앞 촛불문화제가 열린 지난 2일, 8일간의 노숙농성으로 지친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의 노래에 밝게 웃었다. 사회자는 그를 “세월호 가족들에게 ‘싸이’ 같은 포크가수 ‘사이’”라고 소개했다.

싱어송라이터 사이(본명 박필성)는 각종 시위·집회 문화제에 자주 얼굴을 내민다. 평택 대추리, 제주 강정마을, 천성산 시위 현장 등 그가 “관심있고,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세월호 추모 행사도 그랬다.

지난 7일 서울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사이는 세월호 참사 소식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그때 시골에서 텔레비전, 냉장고 등 전자제품 없이 살고 있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인터넷 포털 뉴스도 잘 안 보던 시기였죠. 그런데 보니 사람을 못 구하는 게 이상하더라고요. 시간이 갈수록 의혹이 더 커지는 것도 이상하고요.”

세월호 1주기쯤부터, 친한 인디뮤지션들과 홍대 앞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작은 음악가 선언’을 제안하고 길거리 버스킹 공연을 이어갔다. <다시, 봄>이라는 세월호 추모 음반도 냈다. 앨범 제목이자 타이틀곡인 ‘다시, 봄’은 그가 만든 노래다. “여러 명이 같이 만드는 음반이었고, 그중 합창할 수 있는 곡을 각자 써보자 했어요. 추모다, 슬프다, 사랑한다 같은 건 너무 뻔한 거여서 노래로 만들면 감흥이 없잖아요. 그래서 뮤지션들이 곡을 쉽게 만들지 못했어요. 저도 한달간 한 자도 못썼는데… 어느날 하루 만에 써지더라고요.”

“다시 봄이 오네 아름다운 섬에/ 아무 말이 없이 해가 떠오르네/ 떠오를 것은 따로 있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오오, 기울어진 봄/ 오오, 변한 게 없는 봄// 봄이 궁금해서 꽃들이 피네/ 파도는 자꾸 들이치며 묻네/ 도대체 왜 그런 건가요?/ 왜 아무것도 못했나요?/ 오오, 질문하는 봄/ 오오, 대답이 없는 봄”(‘다시, 봄’ 가사)

대추리·강정 등 ‘집회 단골가수’
‘세월호 기억’ 길거리 공연에
추모음반 ‘다시, 봄’도 제작

시골서 10년 ‘생태주의’ 실천도
“엄마는 백화점 청소·아빠는 건달
‘민중가수’ 활동이 내겐 구원”

그동안 여러 차례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노래를 했지만 지난 2일 공연은 그에게도 특별했다. 붉은 노을과 노란 티셔츠를 입은 군중들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혔을까. “아름다운 순간을 견디지 못한다”는 그는 애초 부르기로 했던 ‘다시, 봄’의 무거운 노래 대신 연달아 흥겨운 ‘냉동만두’ ‘당근밭에서 노을을 보았다’를 불렀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 얘기도 했다. 엄마는 ‘냉동만두’ 가사에 등장하는 육숙희씨로, 실제로 부산 리베라백화점에서 이번에 청소반장으로 승진을 했고, 아빠는 팔에 촌스럽게도 ‘일심’이란 문신을 새긴 진짜 건달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동안 수많은 공연을 했지만 노래하다 부모님 얘기를 한 적은 없어요. 그런데 그날은 며칠간 농성하느라 지친 유가족들이 내 부모님 같아서 갑자기 제 얘기가 툭 튀어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얘기하길 잘한 것 같아요. 그분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부른 밝은 노래 때문에 (제가) 실없어 보였을 텐데 내 얘기를 하니 더 따뜻하게 노래를 들어주신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2년이 지났지만 변한 게 없다. 여전히 세월호는 바다 아래에 있고, 정부는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조사 활동을 강제종료시키고 조사 활동을 막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정부가 잘못이 없으면 (떳떳하게) 밝히면 돼요. 아주 간단한 거예요. 특조위 조사활동을 종료시키고 하는 것 보면 찔리는 게 있나 보다 생각할 수밖에요. 뒷수습을 잘하면 다 같이 울고 끝날 수도 있는 일인데 정부가 의혹을 눈덩이 굴리듯이 키우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정치·사회에 관심 없어 경남 산청과 충북 괴산에서 10년 가까이 자급자족하며 생태주의자로 살았다는 그가 자본과 권력에 맞서 싸우는 힘없는 사람들의 집회에 참석해 노래하는 이유는 뭘까.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하다 쫓겨나는 사람들 등을 보며 많이 배워요. 그런데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섰고, 그동안 많은 싸움이 결국 졌거든요. 그렇다고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것들이 다 스며들고, 남는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이들을 돕는 게 아니라 내가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어 구원받는 느낌이에요. 말로는 잘 못해도 노래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인 거죠. 앞으로도 돈과 상관없이 그렇게 같이하고 싶어요.”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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