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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헉! 내 페친도 SNS 바바리맨

등록 2016-07-19 10:08수정 2016-07-19 10:19

[밥&법] 불쑥불쑥 찾아오는 SNS 성폭력

중년의 페친 “님의 몸 탐닉하듯…”
성희롱 글 보내와 화들짝
계정 보니 가족사진 올린 평범남성

대놓고 음란사진 올려놓거나
“김치녀·돼지” 혐오 공격까지
갈수록 심해지는 온라인 성폭력

억울하고 화도 나지만
대응하면 시달릴까 두렵고
처벌 법 근거 애매해 피하고 말아
kimyh@hani.co.kr
kimyh@hani.co.kr

갑자기 대화창에 성희롱 메시지가 뜬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불쑥불쑥 찾아온다. 화는 나지만, 또 시달릴까 두렵고 처벌할 법적 근거도 애매해 피하고 만다. 오프라인 대면소통보다 온라인 소통이 일상이 된 시대, ‘에스엔에스(SNS) 성폭력’은 또 하나의 그늘이 되고 있다.

1. 트위터 DM에서: 메시지 나누던 트친이 어느 날 갑자기

트위터는 공개성이 아주 강한 에스엔에스지만, 트위터메시지 디엠(DM)은 다르다. 트친(트위터 친구)과 두 사람만 볼 수 있는 내밀한 대화공간이다.

대학원생 최성경(가명·25)씨는 트친과 디엠에서 취향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황당한 메시지를 받았다. “나는 당신처럼 가슴이 작은 여자가 좋은데, 남친이 있다니 너무 아쉽네요.” ‘애인 있냐’는 질문에 ‘남자친구 있다’고 대답을 하자 디엠창에 갑자기 뜬 메시지다. 최씨는 상반신이 나온 흑백사진을 트위터 프로필로 설정해둔 상태였다. 순간 당황한 최씨는 대화창을 종료한 뒤 상대방이 더는 말을 걸 수 없도록 블록(상대방이 말을 걸 수 없도록 차단하는 것)해 버렸다. 프로필 사진도 삭제했다. 상대방은 직장을 다니는 30대 초반의 남성으로, 평소 성희롱과 전혀 관련없는 트위트만 써왔고 일주일에 4~5번 대화를 주고받는 가까운 트친이었다. 최씨는 “오프라인으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표정이든 말투든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성희롱이라고 확실하게 생각했을 텐데 그때는 그냥 무작정 화가 났다”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도 일종의 희롱성 발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낯선 팔로어 쫓아가보니

일대일 대화가 아닌 공개적인 트위터의 타임라인에서도 버젓이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직장인 김정현(가명·38)씨는 지난 6월 ‘붕가붕가, 섹스’라는 닉네임을 가진 트위터 사용자의 팔로를 받았다. ‘범상치 않은’ 닉네임에 해당 사용자의 타임라인을 훑어보니 성행위, 나체 사진들이 줄줄이 나열돼 있었다. 바로 상대방을 차단했다. 김씨의 트위터에는 철학과 시, 그림 등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트위터를 보고 놀라길 바라는 의도를 가지고 팔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길거리에서 바바리맨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모멸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트위터를 시작한 후 반년에 한 번씩은 겪는 일”이라고 김씨는 얘기한다. 지난해 가을엔 모르는 사람이 ‘애스크에프엠’(Ask.fm, 익명으로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는 Q&A 중심의 에스엔에스)에 가슴을 노출한 여자가 온몸을 뒤틀면서 노를 젓는 영상을 올려놓았다. 영상 링크 밑에는 ‘아름다운 당신에게 바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맛있게 생겼다’는 트위터 멘션을 받은 적도 있다. 김씨는 “적은 나이가 아닌데도 수시로 성희롱에 시달리는데 젊은 사람들은 더할 것”이라며 “주변 젊은 나이의 트친들을 보면 그렇다”고 말했다. 김씨는 “왜 여자로 태어나서 이런 지저분한 일을 당하고 있어야 하나 억울하지만 일상적으로 겪다 보니 이제는 화도 안 난다”고 말했다.

3. 페이스북 메시지에서: 점잖은 팬인 줄 알았더니

페이스북도 성희롱 무풍지대는 아니다. 칼럼니스트 정소담(27)씨는 지난 5월 한 중년 남성으로부터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다. 우연히 페북 친구를 맺게 된 사람으로, 정씨 칼럼의 팬을 자처했을 뿐 안면도 없는 사이였다. 정씨를 “꼬마아가씨”라고 부른 남성은 정씨의 사진에 눈길이 간다는 말과 함께 “정말 아름답다. 가끔은 님의 몸을 탐닉하듯 몸과 몸이 뒤섞이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고 대화를 걸어왔다. 이 남성은 한 시간이 지나 “내가 지금 사춘기를 겪고 있는지 약간의 노출이 있다면 몸과 마음이 설레는 현상이 있다”며 정씨의 사진을 보고 자위행위를 했다고 메시지를 다시 보내왔다. 계정을 들여다보니 출신 학교를 명시해놓음은 물론 가족 사진, 조카 사진까지 올려둔 ‘평범한 남성’이었다. 정씨는 “작정하고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라면 자기 정보를 숨기는 게 보통인데,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정씨의 사진을 올린 후 정씨를 태그해 마치 함께 있었던 듯 페이스북에 올린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너의 사진을 보면서 이런 행동을 했다’는 구체적인 메시지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정씨는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기 쉬운데, 엄연한 가해행위와 피해자가 있는데도 그냥 넘겼던 게 옳은 행동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법적 대응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4. 페이스북 댓글에서: 내 게시글이 ‘김치녀’ 혐오 페이지에

자신이 올린 페이스북 게시글이 생각지도 못하게 ‘캡처’를 당하기도 한다. 박정민(가명·29)씨는 부산 지하철이 시범 운영하고 있는 여성배려칸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곤욕을 치렀다. 지난 6월 여성배려칸 사진을 찍어 ‘여성전용칸이라고 했는데 요원이 말려도 남성들이 그냥 다 탄다’는 문구와 함께 페이스북 게시글을 올렸다. 전체공개로 설정한 상태였다. 바로 다음날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당신의 신상이 페이스북에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한 페이스북 페이지가 ‘여성전용칸에 남자가 타도 상관없다, 멍청한 여자야’라는 문구와 함께 박씨의 게시글을 캡처해 올린 것이다. 해당 페이지는 이른바 ‘김치녀’를 혐오하는 내용의 게시글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페이지였다. ‘저년 몸속엔 피가 아니라 김칫국물이 흐르고 있을 거야’ ‘얼굴도 바퀴벌레 같다’는 등의 입에 담지 못할 댓글이 700여개가 달렸다. 박씨를 성적으로 비하하는 댓글도 상당수였다. 해당 게시글은 20여회 공유가 됐다.

이틀 후 미국에 거주하는 친구에게서 ‘페북에서 네 사진이 떠돌아다닌다’는 연락을 받았다. 박씨는 “그냥 여성전용칸에 남자들이 타고 있다는, 가치 판단이 아닌 사실을 담은 문구였다. 그 이유로 성적인 비하에 놀림감이 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5. 페북, 커뮤니티에서: 나도 몰래 찍힌 사진이 ‘조리돌림’

김정은(가명·22)씨는 지난 5월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이 발생한 뒤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강남역에 갔다가, 이로 인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모욕을 당했다. ‘강남역 추모는 폭력’이라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있는 여성과 실랑이가 붙었는데 누군가 그 장면을 찍어 페이스북 여성혐오 페이지와 극우 커뮤니티에 올린 것이다. 김씨의 사진엔 ‘메갈녀’(여성주의 사이트 메갈리아 이용자를 폄하해 부르는 말)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모니터상으로 김씨가 뚱뚱하게 보이길 의도한 듯 포토샵으로 가로로 늘여진 상태였고 “돼지도 생리를 하나” “생리가 아니라 ××가 나온다” 등 성적인 수치심을 주는 악플 수백개가 달렸다. 김씨를 ‘돼지’라고 지칭하며 생리 운운하는 댓글은 물론 김씨의 신체를 하나하나 뜯어봐 품평하듯 조롱하는 댓글도 상당수였다.

이후 김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울면서 악플을 읽었다”는 김씨는 “지나가는 사람 중에 나를 욕했던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무서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평소 내 몸을 좋아했지만 그 일이 있고 난 후 다른 사람이 내 몸에 대해 품평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저 자신을 발견할 때면 비참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의 사례를 접수한 여성인권단체는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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