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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빚 안 갚으면…” 추심 공포, 대리인 덕분에 한숨 돌렸네요

등록 2016-07-18 21:29수정 2016-07-19 14:53

[밥&법]
20대 청년가장 이씨
대부업체 돈 빌렸다가 연체 늪
협박·폭언에 일터 찾아와 겁주기

성남시 도움 ‘채무자 대리인’ 선임뒤
괴롭힘 멈춰 돈벌어 상환 계획
제도시행 2년 채무자 보호 효과
카드사 등 제외돼 실효성 한계
대부업체 추심에 시달려온 한 채무자가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대부업체 추심에 시달려온 한 채무자가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한 문장이 바꾼 세상

“채권추심자는 채무자가 (변호사 등을)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통지한 경우, 채무와 관련하여 채무자를 방문… 하여서는 아니된다.”

채무자 대리인 선임 허용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제8조의 2 → 신설 조항
-2014년 7월15일 시행

“돈을 빌릴 때는 전혀 상상도 못했어요. 하루 연체를 하자마자 그렇게 할 줄은….”

이연주(가명·24)씨는 반년 전 대부업체의 추심에 시달렸던 공포에서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 위축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지 병원비와 생활비에 대한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가 자칫 나락으로 떨어질 뻔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고 지체장애로 일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63)를 모시고 사는 청년 가장이다. 심장병을 앓는 아버지의 병원비와 약값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 지난해 초 유명 대부업체 몇 곳에서 수백만원을 대출받았다. 당시 법정 최고이율에 가까운 34.7%(현 최고이율 27.9%)의 이자를 물어야 했지만, 가진 재산도 없고 소득도 불안정한 이씨에게 돈을 빌려주는 곳은 고금리 대부업체뿐이었다.

“당시 한 사진관에 사진사 보조로 취직을 했는데,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벌이가 괜찮아서 충분히 빚을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진관 경영이 어려워지자 사장은 가장 먼저 이씨를 잘랐다. 일자리를 잃은 이씨는 다른 대부업체에서 추가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몇 달 만에 대부업체 6곳에 1200만원의 빚이 쌓였다.

지난해 10월 이씨는 처음으로 연체를 했다. 이자 입금일을 넘긴 바로 다음날 새벽부터 대부업체 쪽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대출을 해줄 때의 친절하던 직원들은 온데간데없었다. 10분마다 울려대는 전화기 속에선 “입금하지 않으면 곤란해질 것이다” “회사를 못 다니게 하겠다”는 등 험악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알아냈는지 이씨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빨리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해 돈을 갚고 싶었지만, 불쑥불쑥 찾아오는 추심원들 때문에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경우도 있었다. 집으로 찾아오는 추심원으로 인해 사정을 알게 된 아버지는 이씨에게 “내가 능력이 없어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지난해 12월, 이씨는 우연히 경기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의 존재를 알게 됐다. 상담센터는 이씨에게 채무자 대리인을 선임해줬다.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리인을 선임하면 채권 추심자가 직접 채무자를 방문하거나 연락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채무자 대리인 제도’는 옛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을 기초로 해 2014년 7월15일부터 시행됐다.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는 이 법령에 근거해 지난해 4월부터 추심에 시달리는 채무자에게 무료로 채무자 대리인을 선임해주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이씨는 긴가민가했지만 이렇게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센터의 말을 따랐다.

대리인을 선임한 뒤로도 추심원이 이씨를 괴롭히는 일이 몇 주 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대리인이 경고장을 보내는 등 조처를 취하고 난 뒤, 언제부턴가 추심원의 전화와 방문이 뚝 끊겼다. 추심에서 벗어난 이씨는 현재 한 온라인 쇼핑업체 콜센터에 계약직으로 취직해 개인회생절차를 밟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추심의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채무 설계를 할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 이씨는 “법원에서 회생 결정이 내려지면, 5년 동안 착실히 돈을 갚은 다음에, 다시는 이런 실수를 안 하고 제대로 살 수 있도록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대부업체 추심에 시달려온 한 채무자가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대부업체 추심에 시달려온 한 채무자가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의 고은애 상담사는 “청년 채무자의 특징은 고금리 대부업체 대출이 많다는 점이다. 신용도가 낮아 대부업체 외에 마땅히 돈 빌릴 곳이 없기 때문이다. 폭언이나 겁주기 등 추심의 강도도 이들에겐 훨씬 심하다”고 말했다. 고 상담사는 “특히 청년층 채무자들은 일자리가 불안정해 연체의 늪에 빠지기 쉽고, 한번 추심에 시달리게 되면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취업과 실직을 반복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채무자 대리인 제도의 개선점 또한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채권 추심자를 대부업체로만 제한해, 여신금융기관·신용정보회사 등 대부분의 금융기관은 예외로 하고 있어서다. 이런 제한을 둔 건, 대리인 제도를 악용한 악성 채무자들로 인해 금융업계가 위기에 빠질 수 있고,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것이라는 금융업계 등의 반발 때문이었다. 강홍구 금융정의연대 사무국장은 “대부분의 저소득층 채무자들은 은행권, 카드사, 저축은행, 대부업 등의 채무가 섞인 ‘복합 채무’에 시달리고 있어, 채무자 대리인 제도가 큰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의 김미선 센터장은 “제도가 시행된 지 2년이 됐지만, 이 제도로 인해 대부업체가 경영위기에 시달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반면에 악성 추심에 시달리던 채무자들에 대한 보호 효과는 분명하다. 앞으로 대리인 제도의 적용 대상 금융기관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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