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법] 동네 변호사가 간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피의자 또는 피해자로 경찰서나 검찰청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 그 한두 번의 상황에서 수사기관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 억울함을 잊지 못하고 호소하는 분들을 자주 본다. 이런 호소를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변호사로서 느낀 점은 법을 몰라서 억울함을 당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지위 고하나 지식 수준의 정도를 막론하고 수사를 받게 되면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모르는 상태에서 수동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집회에 나갔던 대학원생 최씨는 어느 날 밤 11시 넘어 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집 앞에 나갔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가지고 있던 피디에이(경찰관 휴대용 수배자 조회기)를 보여주면서 ‘일반교통방해죄’로 체포영장을 집행한다고 말하고는 최씨를 경찰서로 연행했다. 경찰이 보여준 영장은 유효기간이 지난 것이었다. 여기서 경찰은 세가지 위법행위를 저질렀다. 우선 체포할 때 경찰은 체포영장 원본을 제시해야 하는데 피디에이 화면만 보여줬다. 또 유효기간이 지난 영장은 사용할 수 없고 법원에 반환해야 하는데 이 영장으로 체포했다. 마지막으로, 체포할 때는 범죄사실의 요지를 설명해야 하는데 죄명만 고지했다. 이른바 ‘미란다원칙 고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최씨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내가 최씨를 대리했다. 법원은 국가가 최씨에게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사실은 다 형사소송법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당연한 듯하지만 의외로 이런 판결이 흔하지는 않다. 이 사건은 그나마 언론에 알려졌기에 소송을 할 수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시민은 그냥 ‘억울해하며’ 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시민이 어느 날 가해자로 몰려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도 많다. 최근 민변에 도움을 요청해온 사건 하나가 있다. 지방에 사는 유씨는 서울 영등포역에서 곤경에 처한 노숙인을 돕고 1만원을 줬는데,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이 엉뚱하게 유씨를 가해자로 몰았다. 유씨가 이에 항의하자 경찰은 공무집행방해라며 유씨를 폭행하고 수갑을 채워 연행하였고 유씨는 부상을 당했다. 억울함에 분노했던 유씨는 수사를 받는 초기부터 당시 영등포역 근처에 설치되어 있던 시시티브이 영상을 찾아 진실을 밝혀달라고 문서로 경찰에 요청했다(이런 것을 ‘수사이의신청’이라 한다). 경찰은 보관기간인 1개월이 지나도록 아무 조처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유씨는 1개월이 다 되어갈 무렵 지역 주민의 도움을 받아 인근에 있던 다른 시시티브이를 찾아내서 검찰에 제출할 수 있었다. 그 영상을 통해서야 유씨는 간신히 경찰이 자신을 불법적으로 체포한 사실을 밝힐 수 있었고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꼼짝없이 공무집행방해로 처벌되었을 터였다. 유씨는 그때 받은 정신적 고통으로 이후 정상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여 가해 경찰관에 대한 징계권고 결정을 받았지만, 정작 경찰은 ‘불문경고’ 처리로 끝내버렸다. 유씨는 포기하지 않고 경찰을 불법체포로 고소하였는데, 이번엔 검찰이 현장에 있던 노숙인이 행방불명이라는 이유로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렸다. 결국 유씨는 무혐의를 받았으나, 상처만 남았을 뿐 불법행위를 한 수사관에게는 여전히 제대로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누가 이 억울함을 보상해줄 것인가.
이런 일 생각보다 빈번하다. 검사, 경찰이 불법수사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된 예를 본 적이 있는가? 국감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 6월까지 접수된 수사기관의 독직폭행 사건 4489건 중에서 기소된 건은 단 6건, 기소율이 0.13%였다(참고로 2013년 기준 일반 범죄사건 기소율은 38.1%). 노골적인 ‘제 식구 봐주기’가 아니라면 이 숫자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반면 애꿎은 시민이 억울함을 당해도 법을 잘 모르니 호소할 길이 없고, 두드려도 법은 제대로 응답하지 않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형사법은 ‘정의’를 세운다는 목적으로 특정 개인(검사, 판사)이 다른 개인을 처벌할 권한을 쥐여준 것이기에 더욱 무섭다. 그런 권한을 가진 사람이 나쁜 의도로 권한을 악용할 경우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영화 <검사외전>에서는 수사를 위해 폭행을 주저하지 않던 검사마저 어느 날 더 큰 권력 앞에 무력하게 ‘억울한 감방살이’를 한다. 그래도 그 검사는 ‘법’을 무기로 교도소 내에서 작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 결국 자신을 구원할 수 있었다. 그만큼 법이 무섭고 법을 안다는 것의 힘을 보여주는 거다. 법을 몰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형사절차에서 시민의 인권 보장은 너무나 중요한 과제다.
송상교/변호사
연재밥&법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