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매각 결렬을 둘러싸고 한화케미칼과 산업은행이 벌인 3000억원대 이행보증금 소송에서 한화케미칼이 막판 상고심에서 일부 승소하면서 이행보증금 중 일부를 돌려받게 됐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14일 한화케미칼이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를 상대로 “과거 지급했던 이행보증금을 돌려달라”며 낸 이행보증금 반환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매각 계약시 작성한 양해각서에 규정된 이행보증금이 ‘위약벌’이냐,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냐였다. 위약벌은 계약 당사자가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상대방에게 내는 일종의 벌금과 같은 개념이다. 때문에 손해배상과는 상관이 없고 당사자간 약정이기 때문에 감액할 수도 없다. 반면,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계약 당사자간 채무불이행이 있을 경우 채무자가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하는 것이다.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은 이를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
원심은 이번 사건의 이행보증금 약정을 위약벌로 봤지만 대법원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액이라고 판단해 액수를 줄일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양해각서에서 이행보증금 몰취 조항을 두게 된 주된 목적이 최종 계약의 체결이라는 채무이행을 확보하려는 데 있었다고 하더라도 3150억원에 이르는 이행보증금 전액을 몰취하는 것은 부당하게 과다하다”라고 판단했다. 이어 “(이행보증금 전액을 몰취해도 된다는) 원심 판단에는 손해배상액의 예정 및 손해배상 예정액 감액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화는 2008년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주식 9639만주를 6조3002억원에 사들이기로 하고 이행보증금 3150억원을 우선 지급했다. 그해 12월 29일까지 최종계약을 하기로 하고 위반할 경우 이행보증금을 산업은행이 갖는다는 내용의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 등으로 경제 여건이 급변하면서 한화가 최종 계약을 미루다 2009년 6월18일 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통지했다. 대우조선 노조는 고용보장 등을 이유로 한화의 확인실사를 저지했다. 산업은행은 양해각서에 따라 한화가 지급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에 한화는 “산업은행의 비협조와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반대로 대우조선해양을 확인실사할 수 없었고, 서브프라임 사태로 국내 금융시스템이 마비돼 자금조달이 불가능하게 됐다”며 소송을 냈다.
1, 2심은 “산업은행이 노조의 확인실사 저지를 해소할 의무 이행을 게을리했다고 볼 수 없고, 단순한 경제상황 변동으로 국내 금융시스템이 마비됐다고 볼 수도 없다”며 한화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이 하급심과 달리 3천억이 넘는 거액의 이행보증금 전액을 산은이 가져가는 것은 과하다고 판단함에 따라 한화는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을 길이 생겼다. 구체적인 반환 범위와 액수는 고법 심리를 통해 결정된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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