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수리 인력이 너무 부족해요.”
지난 23일 삼성전자서비스 서울성북센터 애프터서비스(AS) 기사 진아무개(44)씨가 동료 ㄱ씨에게 지나가듯 이야기했다. 진씨는 그날 오후2시30분께 서울 노원구 월계동 한 빌라 3층 외벽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를 점검하다 8m 아래로 추락했고, 그날 밤 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그의 차량에는 한술도 뜨지못한, 부인이 싸준 도시락이 남아 있었다.
또 한 명의 하청업체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원청, 하청로부터 내려오는 ‘실적 압박’이 수리기사를 안전하지 못한 노동환경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1시간 안에 1대의 에어컨을 수리해야 한다.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는 ‘미결’(수리가 안 된 건), ‘당일률’(당일 고장 접수해 처리된 건) 등을 따져 하청업체의 실적을 산출한다. 하청업체는 미결률을 낮추기 위해 제한된 시간에 가능한 많은 고장 접수를 처리하도록 수리기사들을 독촉한다. 에어컨 고장이 잦은 여름철, 진씨는 하루 13~14시간을 일하면서 많게는 10건이 넘는 고장을 처리해야 했다. 경력 20년의 베테랑인 탓에 다른 수리기사들이 수리하기 힘든 ‘난수리’까지 도맡았다.
“현재시간 외근 미결이 위험수위로 가고 있음, 처리가 매우 부진함, 익일 센터 약속 처리”(오후 4시41분), “금일 처리건이 매우 부진함, 늦은 시간까지 1건이라도 뺄 수 있는 건은 절대적으로 처리”(오후 6시52분)… 진씨가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도, 진씨와 수리기사들의 휴대전화에는 서울성북센터 쪽이 보낸 단체 문자가 수차례 들어왔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공개한 진남진씨의 찢어진 도시락 가방.
사고가 난 곳은 빌라 외벽으로, 아파트 난간과 달리 안전장치 고리를 걸 곳이 없다. 사다리차를 불러 안전한 작업공간을 확보해야 하지만, 하청업체 관계자나 원청 관리자의 허락을 맡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해 시간이 배로 소요된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지회장 라두식씨는 “시간에 쫓기다보니 사다리차는커녕, 안전장구를 제대로 설치할 여유도 없다”고 말했다.
진씨 유족은 26일 새벽 발인을 마쳤다.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노조와 시민단체는 27일 기자회견을 갖고 하청업체 사장과 원청인 삼성에 수리기사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촉구할 예정이다.
고한솔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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