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서울 을지로 옛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70m 높이 광고탑에서 363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여온 한규협(왼쪽)씨와 최정명씨가 8일 오전 농성을 끝내고 내려오기에 앞서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김정효 기자 bong9@hani.co.kr
기아차 하청노동자 최정명·한규협씨
‘땅에서 싸우자’ 설득에 고공농성 풀어
‘땅에서 싸우자’ 설득에 고공농성 풀어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여온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정명(46)씨와 한규협(42)씨가 농성을 시작한 지 363일만인 8일 오후 농성을 중단했다. 오랜 농성으로 건강이 악화된 이들을 걱정한 동료들이 ‘땅에서 싸우자’며 설득한 결과였다.
서울시청 옆 옛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70m 높이 광고탑에서 사계절을 보낸 한씨는 이날 광고탑을 내려오기 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처음에 이렇게 오래 있게 될 줄은 몰랐다”며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은 2014년 9월 기아차 하청 노동자 499명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1심 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기아차가 항소하자 지난해 6월11일부터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지붕없는 철판 위에 앉아 보내는 한여름 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덥기만 한 게 아니라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웠다.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엔 동상에 걸렸다. 이곳은 그야말로 ‘하늘감옥’이었다. 편히 몸을 놀릴 곳 하나 없는 이 곳에서 이들의 유일한 소일거리는 식물을 키우는 것이었다. 페트병을 잘라서 만든 화분에 심은 콩과 나팔꽃 등은 꽃을 피우며 그들을 기쁘게 해줬다.
한씨는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고 법원이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재벌 오너에 대한 조사조차 한 번 안했다. 그러나 불법파견을 바로잡으라고 요구하는 우리에겐 손해배상과 가압류도 모자라 구속까지 시키라고 하고 있다. 불공평한 세상이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땅에서 함께 투쟁하자는 동료들의 설득으로 비록 농성을 풀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계속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도움을 준 분들이 많은데 땅에 내려가면 그분들께 감사인사부터 드리고 싶다”고도 말했다.
최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안전문(스크린도어) 사고가 안타까웠다는 한씨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망한 친구는 합법적인 사내하청으로 노조가 없었고, 우리는 불법적인 하청인데 노조가 있었다. 합법적인 도급이었지만 그 청년은 오히려 정규직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을 거다. 우리가 이 싸움을 이기지 못하면 그들은 더욱 힘들어지게 된다. 내게도 성인이 된 두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들이 비정상적인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다. 파견법에 대한 문제제기, 불법 사내하청에 대한 단죄를 계속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각각 8살과 6살인 막둥이 딸이 보고 싶다던 최씨와 한씨는 땅에 내려와도 가족들을 품에 안지 못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최씨와 한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였다. 이들은 꽃다발을 들고 기다려준 가족과 동료들에게 인사 한마디 건네지 못한채 곧바로 연행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동부시립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노조원들간에 거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이날 오후 광고탑에서 내려온 두 사람이 경찰에 의해 구급차로 끌려가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김정효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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