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숨. 사진 김흥구 제공
[토요판] 커버스토리 / 이한열과 <엘(L)의 운동화>
<엘(L)의 운동화> 낸 소설가 김숨 인터뷰
<엘(L)의 운동화> 낸 소설가 김숨 인터뷰
김겸의 복원이 끝날 무렵부터 김숨의 복원은 시작됐다.
지난해 4월 소설가 김숨은 미술품 복원을 주제로 한 김겸(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장)의 강연을 들었다. 첫 강연에서 김겸은 당시 진행 중이던 이한열 운동화의 복원 상황을 전했다. 이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김숨은 <엘(L)의 운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마음이 오더라도 안 써지면 어쩔 수 없는데 글이 써졌다.”
김숨은 “복원과 훼손은 늘 내 안에 있던 주제”라고 했다. 복원가를 주인공으로 초고를 완성했거나 쓰다 중단한 소설도 있었다. 손에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는 복원가의 이야기가 ‘이소연’(주인공 ‘나’의 동료 복원가)이 되어 <엘(L)의 운동화>로 들어왔다.
“<엘(L)의 운동화>는 나의 통제를 벗어난 소설이었다. 나의 소설인데 나만의 소설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쓴 소설들은 나 혼자 감당하면 완성할 수 있었다. 교정지로 퇴고하는 동안 절실하게 깨달았다. 이한열이란 인물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실제 운동화를 복원하고 그 과정을 들려주신 복원가가 계셨고, 열사의 유품과 그 이야기를 전해주신 기념관장이 계셨다. 무엇보다 아들과 동생을 떠나보내고 고통 속에 살아오신 가족이 계셨다. 1987년 6월9일을 떠올리게 하는 묘사들을 힘들어하셨다. 혹시 잘못 쓴 건 없을까 겁이 났고, 부사 하나도 쉽게 써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훼손된 물질의 복원과 조각난 기억의 복원, 상처 난 기억의 회복과 배반된 시대의 복원. 그 중첩된 의미가 그의 안에서 반응하며 이야기가 됐다. “이한열이란 인물의 상징성을 복원하는 이야기지만, 현시대가 잃어버린 것들을 복원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관한 이야기다.”
이한열의 죽음을 다룬 <엘(L)의 운동화>는 세월호의 죽음과 강하게 결합돼 있다. “오래오래 살겠다고 다짐하는 한 어머니를 보았다. 죽은 자식을 오래오래 기억해주기 위해서. 자신이 죽으면, 죽은 자식을 기억해줄 이가 아무도 없을 것 같아서.”(<엘(L)의 운동화> 104쪽)
세월호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쓴 문장이라고 했다. “이한열의 어머니와 세월호의 어머니가 같은 어머니로 다가왔다”고 김숨은 말했다.
소설은 “여전히 L의 운동화는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이야기 내내 반복되는 표현이다. 이유 역시 소설 속에 있다. “L의 운동화는 세대를 걸쳐 다시 복원될 것이다. 한 세대 두 세대를 걸쳐서 내가 하고 있는 복원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다.”(224쪽)
김숨은 현재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을 다룬 소설을 쓰고 있다. 기억의 훼손과 복원을 붙들고 그는 계속 싸우고 있다.
이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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