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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수년 만에야 떠밀린 사과…4년 만에야 목 튜브 제거

등록 2016-05-23 20:15수정 2016-05-24 17:17

존 리 옥시레킷벤키저 전 대표(가운데 앞쪽)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취재진과 피해자 가족 등에게 둘러싸인 채 청사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존 리 옥시레킷벤키저 전 대표(가운데 앞쪽)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취재진과 피해자 가족 등에게 둘러싸인 채 청사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가습기 살균제 피의자와 피해자

존 리 전 옥시대표 검찰 출석 “가슴 아프다”
피해자모임 10여명 검찰청 현관서 거친 항의
“정말 가슴 아픕니다.”

 23일 오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현관에 선 존 리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현 구글코리아 대표)가 어눌한 한국어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그는 독성 가습기 살균제로 100명 넘는 사망자를 낸 옥시의 외국인 대표로는 처음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존 리 전 대표를 만나기 위해 학교를 조퇴하고 온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임성준(13)군은 뒤늦게 도착해 그를 만나지 못했다. 임 군의 어머니 권미애씨는 “존 리 대표와 우리 아이를 꼭 만나게 하고 싶었다. 존 리 대표가 우리 아이를 보고 뭐라고 말할지 꼭 듣고 싶었다”고 말했다. 임 군은 돌이 지나자마자 폐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기도협착·폐동맥고혈압 등 다양한 합병증을 앓고 있다.

 존 리 전 대표가 출석하기 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 회원 10여명이 검찰청 현관에서 ‘옥시는 한국을 떠나라’ ‘살인기업 처벌하라’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그를 기다렸다. 이들은 존 리 전 대표가 청사 현관에 도착하자 그에게 다가가 거칠게 항의했다. 존 리 전 대표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이 ‘유해성을 알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영어로 “검찰 조사에서 내가 아는 바를 얘기하겠다.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애도한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은 이날 존 리 전 대표를 상대로 제품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제품에 부작용이 있다는 고객 민원을 보고받았는지 등을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 본사가 개입했는지 여부도 조사 대상이다. 존 리 전 대표는 구속된 신현우 전 대표에 이어 5년간(2005년 6월~2010년 5월) 옥시의 최고경영자로 재직했다. 이 시기는 가습기 살균제 판매량이 가장 많았던 때로, 피해자도 가장 많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검찰은 태아 상태로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돼 피해를 본 3명에 대해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피해자에 포함하기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구속된 서울대 조아무개 교수의 실험이 간접 증거가 됐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5살 박나원양, 살균제 후유증 고통
가족들 “애경 수사 빨리 해줬으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박나원양이 23일 오후 서울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장에서 피곤해 하자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다. 박양은 한 살 때부터 목에 산소공급용 튜브를 달고 지내다 최근 튜브 제거 수술을 받고 퇴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박나원양이 23일 오후 서울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장에서 피곤해 하자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다. 박양은 한 살 때부터 목에 산소공급용 튜브를 달고 지내다 최근 튜브 제거 수술을 받고 퇴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나원(5)양은 온 힘을 다해 외쳐야 자신의 목소리를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다. 부산에 살지만 모래바람이 무서워 바닷가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폐로 물이 들어갈까봐 목욕탕에서 목욕을 해본 적도 없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 이후 폐섬유화와 기흉 등이 나타나면서 1살 때부터 줄곧 목에 튜브를 달고 산 탓이다.

4년 만에 목 튜브 제거 수술을 받고 퇴원한 나원이가 23일 어머니 김미향(35)씨의 손을 잡고 사람들 앞에 섰다. “성공적인 수술일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아버지 박영철(44)씨 얘기다. 나원이의 퇴원에 맞춰 이날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나원이와 가족들은 “검찰 수사에선 (나원이가 사용한) 애경이 빠져 있는데 그것부터 빨리 진행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나원이와 쌍둥이 동생 다원이는 2011년 가습기 살균제인 ‘애경가습기메이트’를 100일 정도 사용했다. 석달여 정도 사용한 살균제 2통이 남긴 후유증은 컸다. 나원이는 2012년부터 목 튜브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게 됐고, 다원이도 기흉이 심각해 조금만 달려도 기침을 멈추지 못한다.

2011년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발표하고 판매를 금지했을 때, 쌍둥이 자매가 사용했던 애경가습기메이트는 금지 목록에서 빠져 있었다. 주성분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5년 쌍둥이 자매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1등급 판정을 받았지만, 에스케이(SK)케미칼과 애경 등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에 대한 검찰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편,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은 이날 “생명과 건강은 인권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가치라는 점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고는 그 심각성이 매우 크다”며 “해당 기업과 정부는 책임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피해구제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라”는 성명을 냈다.

방준호 김미영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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