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강남역 여성살인’ 수사발표
경찰이 지난 17일 새벽 발생한 ‘강남역 여성살인사건’이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란 결론을 내놨다. 경찰 발표 이후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등에선 ‘강남역 10번 출구’란 이름으로 일고 있는 추모 모임을 일부 여성들의 과잉행동으로 몰아가는 또다른 ‘혐오’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수사 결과와는 별개로, 이 사건 이후 일고 있는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은 지난 19~20일 두 차례에 걸쳐 피의자 김아무개(34)씨에 대한 심리면담을 진행한 결과, “이번 살인사건이 ‘묻지마 범죄’ 중 정신질환(조현병) 유형에 부합한다”고 2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2003년부터 2007년 사이에 “누군가 나를 욕하는 것이 들린다”고 자주 호소하는 등 피해망상 증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전부터는 이 증상이 여성들에 대한 피해망상 증세로 발전해, 김씨는 경찰에 “내가 일하러 갈 때 여성들이 지하철에서 천천히 걸어감으로써 나를 (출근시간에) 지각하게 만든다”, “여자들이 나를 향해 담배꽁초를 던진다”는 등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특히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던 김씨가 최근 위생상태를 지적받은 뒤 식당 주방보조로 업무가 바뀐 것과 관련해, ‘여성이 자신을 음해했기 때문’이라 생각한 것이 이번 범행을 촉발한 직접적 원인이라고 봤다. 김씨는 경찰에서 “직업적으로 피해를 준다고 생각해 더이상 못 참겠다고 느꼈다. 이렇게 있다가는 내가 죽을 거 같다. 그래서 나도 먼저 죽여야 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에 의한 범죄’라고 규정하는 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심리분석에 참여한 이상경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경사는 “지난해 ‘특정 민족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망상을 가진 사람이 특정 민족 3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는데, 인종혐오 범죄로 보지 않았다”며 “범죄학적으로 봤을 때 정신질환 범죄는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으로 그 집단을 공격하는 증오(혐오)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피해가 일어난 것은 사실이고, 그 대상이 여성이었고 진술 과정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당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부분은 여성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며 경찰 수사 결과 발표와는 별개로 이번 사건에서 표출된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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