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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회장님은 ‘칼석방’ 노동자는 ‘늑장석방’

등록 2016-05-12 19:41수정 2016-05-13 09:06

유흥희 금속노조 기륭분회 분회장(가운데)이 12일 오전 경기 의왕시 포일동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김소연 전 분회장(맨 오른쪽)과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왼쪽) 등 동료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의왕/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유흥희 금속노조 기륭분회 분회장(가운데)이 12일 오전 경기 의왕시 포일동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김소연 전 분회장(맨 오른쪽)과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왼쪽) 등 동료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의왕/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고무줄’ 교도행정

구치소별 시간기준 불분명·자의적
SK 회장·포천 시장 등 0시5분 석방
기륭 분회장 등은 5시 넘겨 풀어줘
“형 만료시 ‘지체없이’ 석방 필요해”
누구는 새벽 0시5분, 누구는 새벽 5시?

12일 새벽 5시,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문이 열리며 유흥희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이 걸어나왔다. 유 분회장은 정규직 전환 합의를 깨고 야반도주한 최동열 회장의 집을 수차례 찾아 초인종을 눌렀다가 ‘주거침입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자 “부당한 판결”에 항의한다는 뜻으로 지난달 29일 노역을 자처했다. 이날 0시를 기점으로 14일간의 노역 기간은 끝났다. 하지만 ‘0시에 내보내 달라’는 수차례 요구에도 서울구치소는 새벽 5시가 돼서야 그를 내보내줬다.

대한민국에서 형기를 마친 수형자의 석방시간은 ‘고무줄’이다. 지난해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과 성추행 혐의로 징역을 살고 나온 서장원 경기도 포천시장은 모두 0시5분 의정부교도소에서 ‘즉시 석방’됐다. 반면 ‘통합진보당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서 내란선동 혐의로 징역 2년을 복역한 한동근 전 수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유 분회장처럼 지난해 9월 대전교도소에서 새벽 5시 석방됐다. 재벌과 정치인 등 힘있는 사람들은 ‘칼석방’을 시켜주면서도 노동자 등 힘없는 사람들은 ‘늑장석방’을 해 불필요한 수형 시간만 늘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15년 3월 이후 주요인사별 석방시간
2015년 3월 이후 주요인사별 석방시간

김소연 전 기륭전자분회장은 “법적으로 형기가 종료되는 날 0시부터 출소할 수 있는 것을 무시하고 5시간 이상 구치소에 있게 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반발했다. 기륭전자분회, 콜트콜택 등 노동계 친구들 70여명은 서울구치소의 자의적인 석방시간에 항의하고자 11일 밤 9시부터 구치소 앞에서 ‘흥희 넘치는 문화제’를 열고 유 분회장의 즉시 석방을 촉구했다. 유 분회장의 변호를 맡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권력 있는 사람은 빨리 내보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늑장 석방하는 등 구치소별로 석방시간 기준이 불분명하고 자의적”이라며 “자정이 넘으면 바로 내보낼 수 있도록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형법 제86조에는 ‘석방은 형기 종료일에 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구체적인 시간은 명문화돼 있지 않다. 서울구치소는 “2015년 3월 법무부 지침에 따라 오전 5시 석방이 규정”이라며 “야간이라 교통편도 부족하고 여성과 노약자 등은 범죄 표적이 될 것이 우려되는 등 문제가 제기돼 석방시간을 늦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구치소마다 출소시간은 다를 수 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의 석방시간과 관련해 에스케이 쪽은 “최 회장은 당일 0시에 일반 수형자들과 함께 석방됐다. 다만 일반 수형자들의 언론 노출을 우려해 5분 늦게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도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124조를 보면 사면, 가석방, 형기종료에 따른 석방 등에 따라 석방시간이 구분돼 ‘사면’인 최 회장 등과 ‘형기 종료에 따른 석방’인 유 분회장 등의 석방 시간이 달랐을 뿐 누구를 더 빨리 내보내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고무줄 석방시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박지원 국민의당(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이 법안은 현행법 제124조의 각 조항에 “지체 없이”를 넣어 형기 만료 즉시 석방을 명문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 의원은 “법무부가 교정 편의 때문에 형기를 마친 수형자를 묶어두고 있는데, 수형자의 인권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석방 시기를 명확하게 통일하는 법안을 20대 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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