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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죽고 싶다는 말 매일 듣는 ‘감정 중노동’

등록 2016-05-09 20:01수정 2016-05-09 20:52

정신보건전문요원의 3중고

중증정신질환자 상담관리사
서울에만 27곳 350여명 일해

수시로 성희롱 등 ‘폭력 노출’
‘고용 불안’에 ‘실적 압박’까지

“우리가 안 행복한데 어떻게
마음 아픈 사람들 돕겠는가”
서울시의 한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근무하는 이아무개 정신보건전문요원은 입사 3개월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초기 상담을 받겠다며 센터를 찾은 50대 남자와 동료 선생님이 상담실에 들어갔는데, 잠시 뒤 동료 선생님이 창백해진 얼굴로 뛰쳐나왔다. 내담자 혼자 상담실에 내버려둔 것이 걱정됐던 이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담실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자위를 하고 있던 대상자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날 이후 이씨는 비슷한 체격을 한 남성의 뒷모습만 봐도 당시가 생각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씨처럼 서울시 정신건강 관련 공공시설에서 일하는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은 상담하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경험한다. ‘죽고 싶다’는 얘기는 거의 매일 듣고, 수시로 성희롱과 폭언,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도움 요청이 오면 밤낮없이 경찰지구대를 찾아가야 한다. 자살 시도자가 병원으로 실려 가도 연락을 받는다. 주 업무는 조현병(정신분열증) 같은 중증 정신질환자를 상담하고 관리하는 일이지만 수시로 알코올 중독, 아동 정신질환 등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한 대민 강좌나 캠페인도 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처럼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이 생겼을 땐 “우울하다” “무섭다”는 전화상담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시에는 지역구별로 운영하는 정신건강센터 25곳이 있고, 광역형 센터와 자살예방센터까지 포함하면 총 27곳에서 350여명의 정신보건전문요원이 일을 하고 있다. 이들 중 85%가 여성이다. 중증 정신질환 대상자 방문상담은 2인1조로 하게 돼 있지만 인력이 부족해 이런 원칙이 잘 지켜지진 않는다. 임신부도 담배를 피우는 상담자의 방에 들어가야 할 때도 있다.

감정노동 고위험 직군인데 고용마저 불안정하다. 서울시 정신건강증진센터 25곳 중 22곳이 민간 위탁기관이다. 직영이라고 다를 바 없어,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은 짧게는 10개월부터 2~3년짜리 근로계약서를 쓰고 일하고 있다. 서울시정신보건지부에 따르면 100%에 가까운 정신보건전문요원이 모두 비정규직이다. 실적 압박에도 시달린다. “상담 건수가 중요하다 보니 한 달에 두 번 관리하던 중증 정신질환자를 한 번밖에 찾지 못하기도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마음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감정노동자인 이들은 지난 2월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조(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서울시정신보건지부)를 만들었다. 김성우 서울시정신보건지부장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우울증, 스트레스 등 정신질환이 증가하면서 정신건강 사업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은 업무에서 폭언과 폭력을 겪는 것은 물론이고, 고용불안으로 인해 늘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가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노조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정신보건지부는 서울시와 정신보건사업의 서비스 질 향상과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협상을 벌일 계획이다. 김 지부장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등 우리가 안 행복한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재활을 도울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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