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 한국법인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계획을 밝히는 동안 피해자 가족들이 항의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영국 본사 이사회 구성원 8명 살인죄 등 검찰 고발
“검찰에서 수사한다니까, 소비자들이 불매운동 한다니까, 그제야 경제적 논리로 기자회견을 연 옥시레킷벤키저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5년 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아내와 딸을 동시에 잃은 안성우(40)씨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렇게 고대했던 옥시레킷벤키져(옥시)의 사과를 5년만에 받아냈지만, 안씨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2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피해자와 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파렴치한 살인기업 옥시의 사과는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옥시의 불매운동 확산에 겁이 나서 옥시가 쇼를 하는 것”이라고 옥시 쪽의 사과에 대해 일갈했다.
이날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독립기구를 통해 ‘포괄적 보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옥시의 뒤늦은 사과에 오히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및 유족들의 분노는 더 커졌다. 가습기 살균제를 썼다가 왼쪽 폐 아래쪽의 절반을 잘라낸 윤정애(45)씨는 “(2001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15년 동안 고통 받은 걸 생각하면, 오늘 사과가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들이 받은 고통 받은 만큼, 옥시 임직원들 가족들도 고통을 느껴봐야 정신 차릴 것이다”고 말한 뒤, 흐느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유족 84명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날 옥시의 영국본사 레킷벤키저 라케시 카푸어 등 이사회 구성원 8명 전원을 살인죄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레킷벤키저가 한국 옥시를 인수해 (독성물질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를 넣은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고 판매하려 할 때, 안전검사의 필요성이 검토됐음에도 실행하지 않았고, 판매과정에서도 아무런 점검을 하지 않았다”고 고발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이날 피해자 가족들의 고발장이 접수되기 전 영국 본사에 가습기 살균제 제조와 관련해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레킷벤키저가 옥시를 인수한 시점이 피에이치엠지가 들어간 살균제를 출시한 2000년도 이후라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황정화 변호사는 “아직 고발장이 접수되기 전이니 최종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검찰은 옥시 인수 뒤에, 10년간 제품을 판매한 영국 본사가 그 과정에서 아무런 책임이 없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은 사건 소멸시효 등을 이유로 당초 이달 30일로 예정했던,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를 상대로 한 집단 민사소송을 16일부터 2주 앞당겨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재욱 기자 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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