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엠블럼
환경부, 디젤차 16종에 대한 조사 결과 ‘오는 5월 발표 예정’
‘폴크스바겐’만의 문제일까?
‘폴크스바겐’만의 문제일까?
지난해 9월 독일 폴크스바겐그룹이 디젤차에 대해 인증시험 모드에서만 규제 기준치를 맞추고, 실제 주행환경에서는 기준치를 훌쩍 넘는 유해 배출가스를 내뿜도록 성능을 조작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던 뉴스, 기억하시나요? 환경규제 통과를 위해 정부와 소비자들을 속인 것이지요. 폴크스바겐은 문제가 된 엔진이 장착된 차량은 전 세계 1100만 대가량이라고 밝힙니다.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을 뒤흔든 ‘디젤게이트’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을 비롯해 유럽 곳곳에서는 디젤차 배출가스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폴크스바겐만 ‘눈속임’을 했겠느냐는 의구심이지요. 우리 환경부는 디젤차 16종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오는 5월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에 앞서 지난 22일(현지시각) 폴크스바겐의 고향 독일 정부가 디젤차 배출가스 조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디젤게이트가 터진 뒤 불거진 의혹은 어디까지 확인이 됐는지 뉴스AS에서 조근조근 살펴보겠습니다.
1. 폴크스바겐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가물가물하지요?
사실 수년 전부터 많은 자동차 브랜드의 디젤차 배출가스량이 인증시험 모드와 실제 주행환경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폴크스바겐 사태가 새삼 ‘디젤게이트’라고까지 불리게 된 까닭은 이렇습니다. 인증시험 모드와 실제 주행환경에서의 배출가스량 차이가 여러 가지 외부 요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자동차 제조사가 인증시험 모드에서만 규제 기준을 충족시키도록 일부러 ‘눈속임’을 한 사실이 확인된 거지요.
폴크스바겐은 핸들·바퀴 움직임 등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자동차가 인증시험 환경에 처하게 되는 상황을 자동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이럴 경우 연비를 희생하는 대신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을 줄이도록 전자제어장치(ECU)를 프로그래밍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면 인증시험 환경이 아닌 것으로 인식되면, 즉 실제 주행환경이 되면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잘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것이죠. 디젤차의 경우 연비가 높으면 질소산화물이 많이 나오고, 질소산화물을 줄이려면 연비가 낮아지는 문제가 있는데요. 폴크스바겐은 배출가스와 연비를 동시에 측정하지 않는 규제상 구멍을 이용한 것입니다.
실제 주행환경에서 더 많은 배출가스가 나온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확인되면서 유럽연합(EU)에서는 실도로 주행 상황에서의 배출가스 규제 기준을 따로 마련해 2017년 9월부터 시행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2017년이 되지 않은 지금까지는, 실제 도로를 달릴 때 내뿜는 배출가스량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EU 에프티에이(FTA)에 따라 한국과 유럽의 디젤 규제 기준은 동일합니다. 미국이나 중국의 경우 전체 승용차 가운데 디젤차 비중은 1%에 불과합니다. 반면, 유럽은 디젤 승용차 비중이 50%가 넘는 ‘최대 시장’이며, 한국도 디젤 승용차 비중이 27%(2015년 6월 말 기준)로 높은 편에 속합니다.
2. 폴크스바겐만 ‘죄인’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디젤게이트’가 터진 지난해 9월 독일 연방교통부 산하 자동차청(KBA)은 유로 5·6(유럽연합이 정한 디젤차 배출가스 규제) 기준을 충족한 53종 디젤차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독일 정부의 22일(현지시각) 발표를 보면, 폴크스바겐그룹 소속인 △폴크스바겐 △아우디 △포르쉐 뿐 아니라 △메르세데스 △제너럴모터스(GM)가 보유한 오펠 등 독일 브랜드 5곳은 유럽에서 판매한 디젤차 63만대에 대해 배출가스 저감장치 성능을 ‘조정’하는 소프트웨어를 자발적으로 수리(리콜)하는데 동의했습니다. 실제 주행 환경에서 기준치보다 훨씬 많은 배출가스가 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리콜에 나선 브랜드 외에도 인증받은 수치보다 많은 배출가스를 내뿜는 브랜드는 더 있습니다. △알파로메오 △쉐보레 △다시아 △피아트 △포드 △재규어 △랜드로버 △지프 △메르세데스 △닛산 △르노 디젤차 등입니다. 현대차의 ‘ix35(한국명 투싼·유로5 규제 충족)’와 유럽 전략 모델인 ‘i20(유로6 규제 충족)’도 마찬가지고요.
독일 일간지 <디 벨트> 보도를 보면, 독일 정부는 다른 자동차 제조사가 폴크스바겐이 사용한 ‘눈속임’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지는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제조사들이 바깥 기온이 특정 온도 이하로 내려갈 때, 배출가스 저감장치 성능을 끄는 기술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배출가스 인증시험은 20~30℃ 환경에서 이루어집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 보도에 따르면, 베엠베나 메르세데스 차량의 경우 10℃가량에서, 오펠 차량의 경우 17℃에서 ‘배출가스 저감장치 작동이 꺼지도록’ 프로그래밍이 돼 있다고 합니다. 인증시험은 무사히 통과한 뒤 실제 주행환경에서 바깥 온도가 인증치보다 조금만 낮아져도 기준치를 넘는 배출가스를 내뿜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폴크스바겐이 사용한 ‘눈속임’ 소프트웨어를 다른 제조사들은 정말 사용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혹도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닙니다. <슈피겔>은 부품업체 보쉬가 불법 소프트웨어를 폴크스바겐에만 납품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3.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끈 건 불법 아닌가요?
그런데 말입니다. 외부 기온에 따라 배출가스 저감 장치 성능을 다르게 조정한 것도 엄밀히 따지면 조작 아닐까요?
독일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자동차 업체들은 바깥 기온이 매우 낮아질 경우 엔진의 배출가스 정화 장치와 엔진에서 ‘녹’ 발생의 원인이 되는 응결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고자 배출가스 저감장치 성능을 조정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도브린트 독일 교통부 장관도 22일 브리핑에서 “바깥 온도에 따라 저감장치 작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 정당하느냐는 의문은 있지만, 불법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습니다.
폴크스바겐이 한 속임수를 법적으로는 ‘임의 설정(defeat device)’이라고 부르는데요. ‘임의 설정’이란, 일반적인 운전·자동차 사용 조건에서 배출가스 시험 모드와 다르게 배출가스 관련 기능을 저하되도록 부품의 기능을 정지·지연·변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과 유럽은 모두 ‘임의 설정’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2011년 현대·기아차 디젤 스포츠실용차(SUV)가 에어컨을 켜고 달릴 때 질소산화물(NOx)을 기준치보다 최고 11배 배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임의 설정 규제가 도입됐습니다.
다만, 자동차의 안전한 운행, 엔진의 사고, 손상을 방지하기 위한 경우엔 임의 설정으로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조사들이 특정 온도에서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끄도록 프로그래밍한 것을 두고 곧바로 ‘불법’이라고 하기가 쉽지 않다는군요.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엔진의 배출가스 정화 장치와 엔진에서 ‘녹’ 발생의 원인이 되는 응결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폴크스바겐의 속임수를 규명한 비영리단체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의 피터 목 박사는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외부 기온 10℃는 (자동차에 문제가 생길만한) 극한 조건이 아니므로 높은 배출가스량에 대한 해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합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국내의 한 자동차 전문가도 “영하 이하로 내려가도 자동차 내구성엔 문제가 없다”고 일침을 놓았습니다.
4. 과연, 미국은 독일과 생각이 같을까요?
하지만 미국은 “바깥 온도에 따라 저감장치 작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 정당하느냐는 의문은 있지만, 불법은 아니다”라고 밝힌 독일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입니다.
올해 2월 미국에 거주하는 벤츠 디젤차 소유자들은 벤츠-메르세데스 모회사인 독일 다임러를 상대로 차량에 배출가스 조작장치(임의 설정)를 탑재했다며 소송을 냅니다. 이 소송을 대리하는 법률회사 헤이건스 버먼은 “벤츠가 친환경 디젤 엔진 기술이라고 한 ‘블루텍’ 적용 차량도 대기 온도가 10℃ 밑으로 내려갈 경우 질소산화물 저감장치가 꺼지도록 만들어 미국 규제 기준을 19배나 초과하는 질소산화물을 배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임러는 일단 이 소송에 대해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을 보면, 미국 법무부 요구로 독일 다임러가 디젤차 배출가스 인증 절차를 내부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하네요. 독일에선 “불법은 아니다”라고 나온 판정에 대해 미국 법무부는 과연 어떻게 판단할지 관심이 쏠립니다.
5. 한국에서 보상·수리 계획은요?
폴크스바겐그룹은 이제 막 미국에서 사태 수습을 위해 첫 걸음을 뗀 상태입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를 보면, 폴크스바겐은 미국 환경보호청(EPA) 및 관계 당국과 문제 차량을 산 소비자들에게 제품 되사기·수리·보상 등 다양한 구제책을 제공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번 합의는 지난 9월 미국에서 리콜 명령을 받은 2000㏄ 이하 디젤차 구매자 48만2000명에게만 해당됩니다.
국내에서 판매된 2000cc 이하 폴크스바겐·아우디 배출가스 조작 차량은 12만1038대입니다. 폴크스바겐은 한국에선 미국에서와 같은 보상책을 제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앞서 폴크스바겐은 유럽과 한국 소비자를 배제한 채 북미 구매자들에게만 선불카드 등의 형태로 1000달러(약 116만원) 상당의 금전적 보상, 3년 동안 긴급출동 서비스 무상 제공 등 보상책을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지난해 11월 2000㏄ 이하 디젤 엔진뿐 아니라 3000㏄ 엔진을 탑재한 아우디·포르쉐 모델 약 8만대에 대해서도 ‘눈속임’ 소프트웨어가 설치돼 있다며 추가로 리콜 명령을 내렸었는데요. 이 회사는 한국에서 같은 문제를 지닌 3000cc 디젤차가 판매됐는지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내에 유통된 배출가스 조작 차량이 더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참, 미국·유럽·한국에서 폴크스바겐 차량에 대한 수리(리콜)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독일·미국 정부로부터 수리 방식을 승인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우리 환경부는 폭스바겐아우디코리아가 제출한 결함시정계획서(리콜)에 수리용 소프트웨어조차 포함돼 있지 않다며 보완을 요구한 상태입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미국에서 폴크스바겐 디젤차에 대한 대규모 리콜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지난 17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전시장 앞에서 독일 환경단체 ‘도이체 움벨트힐페’(독일환경도우미·Deutsche Umwelthilfe)가 디젤차 배기가스의 유해성을 알리고 있다. 박현정 기자
2015년 9월 30일 오후 인천시 서구 경서동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에서 직원들이, 배출가스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폴크스바겐 그룹의 디젤 승용차 4개 차종(골프, A3, 제타, 비틀)에 대한 환경부의 인증시험 재검사를 앞두고 예비주행 준비를 하고 있다. 인천/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서울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2015년 10월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사건에 대한 폭스바겐코리아의 신속한 진상규명과 정부의 경유차에 대한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