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방송 진행자인 ‘망치부인’ 이경선씨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좌익효수’라는 필명으로 자신을 협박하고 가족을 모욕한 혐의로 기소된 국가정보원(국정원) 직원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뒤 법정밖으로 나와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며 심경을 밝히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피고인, 무죄 부분의 판결 내용에 이의 없나요?”
21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513호 법정에서 이창경 판사(형사5단독)가 ‘좌익효수’라는 인터넷 필명으로 알려진 국가정보원 직원 유아무개(42)씨에게 물었다. 신분 노출을 막으려고 방청석 앞에 쳐진 차폐막 너머에서 “네”라는 차분한 대답이 들려왔다. 이 판사는 “국가정보원법 위반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 모욕죄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6월에 처한다. 단, 1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는 주문을 읽었다. 유씨는 선고 뒤 유유히 법정 옆문으로 사라졌다.
좌익효수에 대한 이날 판결의 핵심은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느냐 여부였다. 국가정보원법 9조 2항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의 선거운동을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좌익효수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기존 국정원 심리전담팀 이외에 일반 국정원 직원으로서 선거개입을 인정하는 첫 사례가 된다. 좌익효수는 당시 대공수사국 소속 5급 공무원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좌익효수가 남긴 글의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씨가 과거부터 선거와 무관하게 여러 정치인들을 비방해왔고, 선거 관련 댓글 수가 많지 않다”며 무죄 판단을 내렸다. 이 판사는 “(수천 건의 글 중) 유씨가 남긴 2011년 4월27일 국회의원 보궐선거 관련 글은 6건이고, 2012년 12월19일 대통령 선거 관련 글은 4건에 불과하다”며 “유씨가 글을 남긴 곳(디시인사이드)의 영향력, 공개성, 댓글 게시 시점, 댓글의 내용이 특정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 내용인 것 등이 (선거개입 의도가) 의심스러운 사정은 일부 존재하나 후보자의 낙선을 도모한다는 의사가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유씨의 댓글 활동이 개인적인 일탈일 뿐, 국정원 차원의 조직적인 선거개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좌익효수가 남긴 수천 개의 정치개입성 글 중 선거개입으로 볼 수 있는 글이 10건에 불과하다는 법원 판단은 너무 소극적인 해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단 한 건의 글이라도 선거개입성 내용이 담겼다면 국정원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게 피해자인 이경선씨 쪽 주장이다.
법원의 이번 판단은 검찰 수사 단계에서 이미 예견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2014년 6월 좌익효수를 한 차례 조사한 뒤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여론의 비판이 일자 2년4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또 검찰은 2013년 7월 좌익효수 말고도 댓글 활동을 한 다른 국정원 직원 3명의 존재를 확인하고도, 존재가 알려진 좌익효수만 입건해 수사하고 나머지 3명은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숨겨져 있다가 2년 넘게 지난 올해 초에야 드러났다. 검찰이 국정원 직원들의 정치개입 행위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있어, 유씨에 대한 기소 내용도 부실했을 가능성이 있다.
유씨의 악성 댓글로 피해를 본 인터넷 방송인 이경선씨는 이날 “업무 시간에 3천개가 넘는 글을 남겼는데, 이것을 좌익효수 개인의 일탈로 본다는 법원 판단을 납득할 수 없다. 검찰이 수사를 더 해 항소심에서 제대로 진실을 다퉈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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