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수사대상자와 통화 안했어도 무차별 통신자료 엿봐
국정원 “보안법 내사과정 확인”…경찰도 “이해안돼”
국정원 “보안법 내사과정 확인”…경찰도 “이해안돼”
국가정보원이 내사(수사) 대상자의 통화내역 관련자는 물론 휴대전화 주소록에 저장된 전화번호까지 무차별적으로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29일 국정원은 지난 1월7일 기자부터 세월호 가족, 대학생 등 일반시민까지 통신자료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았다는 <한겨레> 보도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의 내사 과정에서 압수수색한 휴대폰에 저장돼 있던 전화번호의 가입자 신원을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통신자료 조회에 대해 그동안 “수사(내사) 대상자와 통화내역이 있는 전화번호의 가입자가 누구인지 확인한 것”이라고 해명해왔다. 애초 해명과 달리 수사 대상자의 통화내역(통화나 문자의 발신·수신 및 통화 시간 등) 외에 휴대폰에 저장돼 있는 전화번호 가입자까지 무차별적으로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단순한 신원 확인이 아니라 사찰 등 별도 목적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29일 <한겨레> 기자 4명과 민주노총 실무자 14명,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당직자 각각 1명의 통신자료가 지난 1월7일 일련의 ‘문서번호’(대지-40, 41, 42)로 조회된 것은 “동일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이들의 번호가 압수수색된 휴대폰 연락처에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국정원 관계자는 “이 내사 대상자의 휴대전화 압수수색은 영장을 받아 적법하게 이뤄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정원의 해명을 종합하면, 내사 대상자와의 통화내역뿐만 아니라 압수된 그의 휴대폰에 번호가 저장만 돼 있어도 무조건 통신자료가 조회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1월7일 통신자료가 제공된 이들 간에는 뚜렷한 접점이 없었다. 1월7일은 <한겨레>가 분석한 161명의 통신자료 가운데, 국정원이 요청한 1년치 통신자료의 25%가 몰려 있는 날(<한겨레> 3월29일치 1면)로서, 이날 통신자료를 제공당한 이들은 전날 <한겨레> 집계에 포함된 42명 이외에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정원이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까지 싹쓸이해 통신자료를 들여다보는 것을 두고, 다른 수사기관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선 경찰서의 한 경찰은 “통화내역을 먼저 살펴본 뒤 사건 시점 등 의심 가는 지점이 있는 번호에 대해서만 통신자료를 요청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압수한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통신자료를 요청하는 건 수사 목적에도 맞지 않고,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또다른 경찰은 “최근 대규모 ‘성매매 리스트’ 사건처럼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 자체가 고객 명부가 될 수 있는 경우라면 몰라도, 수사 대상자의 혐의를 밝히는 데 꼭 필요 없는 번호들까지 들여다보는 건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 등에선 국정원의 이런 과도한 통신자료 조회가 국민의 통신비밀 및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법적 대응을 벼르고 있다. 이광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수사는 기본적으로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통신자료를 수집하는 건 개인정보보호와의 비례성의 원칙에 비춰 지나치다”며 “국정원은 최소한 보안법 위반 내사를 위해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에 대한 통신자료를 들여다보는 게 반드시 필요했다는 점을 스스로 소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방준호 박수지 최우리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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