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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카톡 노동’ 퇴근이 없다

등록 2016-03-21 21:05수정 2016-03-22 15:28

병원 상담직·이통사 직원·교사…
퇴근 뒤·휴일까지 ‘손안의 족쇄’
노동환경 급변속 논의 물꼬터야
카카오톡
카카오톡
서울 강남의 기업형 성형외과에서 상담실장으로 일하는 김아무개(28)씨는 3년 넘게 카카오톡(카톡) 상담 업무를 하고 있다. 전국 어디서나 거의 전국민이 사용한다는 카톡은 병원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마케팅 공간이다. 대부분의 성형외과가 병원 환자 상담뿐 아니라 일반인의 카톡 상담까지 업무를 확장하고 있다. 김씨는 관리자로부터 업무용 휴대전화를 받아 개인용과 함께 2대를 들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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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 이벤트 광고가 나가는 시기, 평소 하루 평균 카톡 상담 30~40건이던 김씨의 일은 2배로 는다. 카톡 ‘플러스친구’로 등록된 사람에게만 가는 광고 메시지지만 ‘왜 내게 이런 카톡을 보내느냐’는 항의를 하는 이부터 욕이나 성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이들까지 김씨가 대응해야 할 일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슴 성형 이벤트를 시작하면서 가슴 성형 전후 비교 사진이 나갔는데, 어떤 사람은 ‘나 이런 가슴 좋아한다. 만져봐도 되겠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또 ‘(이런 가슴을 가진 여성을) 만나보고 싶다’고도 한다. 프로필 사진에 얼굴을 올려뒀더니 ‘너 얼굴 못생겼으니 너부터 수술하라’고 하는 일도 있었다”며 기겁을 했다. 자정이 다 된 밤이나 새벽 시간에 평범한 질문을 남긴 뒤 ‘왜 대답이 없냐’고 계속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김씨는 자신이 하는 일이 “감정노동의 대표 직종으로 꼽혀온 콜센터 상담 업무의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고충을 호소하는 건 김씨 같은 상담직 노동자만이 아니다. 메신저와 카톡 등 에스엔에스를 통한 노동이 직종을 불문하고 늘어나면서 이제 한국인의 노동 현장은 손과 피시 안의 작은 세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른바 ‘카톡 노동’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퇴근뒤 상사 “왜 업무처리 안하냐”…한밤 고객들 성희롱 문자

김씨의 고충은 ‘진상’ 카톡 친구를 상대하는 것만이 아니다. 관리자가 늘 카톡창을 지켜보고 있어 자신의 노동이 언제 어디서나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늘 달고 산다.

김씨는 관리자로부터 업무용 휴대전화로 “고객 응대에 바로 대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회사 대표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공유하기 때문에 관리자도 창을 볼 수 있다. 관리자는 김씨가 보낸 메시지를 수시로 확인하며 “왜 이런 대답을 했나” “왜 이리 답변이 오래 걸렸나” 등을 따진다. 주로 카톡 상담을 병원 예약까지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질책이 이어진다.

성형외과 카톡상담

‘카톡 고객’ 성희롱 메시지 예사

관리자 수시 확인하며 응대 강요

퇴근뒤 카톡 답변 못했다고 핀잔

학교·학원 선생님

“학부모가 사진 평가해 스트레스”

“시도 때도 없이 상담 메시지 날려”

시공간 넘는 ‘카톡 감정노동’

업무시간 외·휴일 사용 경험 70%

퇴근 뒤에도 ‘주당 11시간’ 더 일해

“카톡 노동은 인권문제 인식 필요”

“퇴근 뒤 영화를 보느라 카톡 답변을 못했어요. 다음날 환자가 답을 못 받았다며 병원에 전화를 해 크게 혼났죠. 메시지를 놓치면 안 되니까, 생활에서도 대답을 빨리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것 같아요.” 김씨는 퇴근 뒤에도 카톡 질문에 꼬박꼬박 답변을 하면서도 자신의 ‘실제 근로시간’을 따져본 적이 없다. 그럴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이미 3년 전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의 노동자 700명을 상대로 벌인 ‘정보통신기기에 의한 노동인권 침해 조사’에서도 카카오톡 등 에스엔에스(응답자 가운데 63%)는 업무상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정보통신 기술로 꼽혔다.

효율적인 만큼 사적인 시·공간까지 노동이 개입될 확률은 더 높아졌다. 실제 요즘 단체카톡방 없는 직장인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휴대전화 신제품이 나오는 시기,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 휴일 근무가 잦은 이동통신회사에서도 관련 부서마다 분주하게 단체방이 만들어진다. 대리점 인센티브나 고객 할인 방안, 관할 지역 내 대리점의 기기별 판매 현황 등이 실시간으로 보고된다. 그럴 때마다 재택근무를 한다는 한 직원은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메시지 때문에 핸드폰에 머리를 박고 있으면 휴일 집안 분위기도 안 좋아진다”고 말했다. 통제의 일상화, 일방적 소통으로 불화가 발생하기도 쉬워졌다. 대기업 사무직인 송아무개(32)씨는 “상사가 퇴근하면서 업무지시를 메신저로 남길 때가 많다. 일부러 괴롭히려 하진 않겠지만, 메시지를 받으면 그때부터 업무 생각을 해야 하니 야근하는 기분이다. 단체방 탈옥을 상상한다”고 했다.

교사들도 불편함을 호소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김아무개(33)씨는 “학기 초에 하실 말씀 있으면 문자로 달라고 부탁해도 카톡으로 보내는 부모님들이 있다. 교사의 프로필 사진이나 대화명을 평가하는 학부모들도 있는데 그건 정말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영어학원 강사인 최아무개(34)씨는 “아이들은 게임 메시지, 학부모들은 상담 메시지를 시도 때도 없이 날린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펴낸 <월간노동> 2월호에 실린 ‘스마트기기 업무활용 실태와 효과’를 보면 제조업 및 주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남녀 임금근로자 2402명 중 업무시간 이외 또는 휴일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피시 등 스마트기기를 사용해 메신저, 이메일, 에스엔에스 등으로 일한다는 응답이 70.3%(1688명)였다. 이들의 평균 스마트기기 사용 시간은 주당 11시간(677분)이 넘었다. 업무시간 이외 업무 목적으로 스마트기기를 사용하는 시간은 평일 하루 평균 약 86분, 휴일 하루 평균 약 95분이었다. 주로 ‘직장 메일 연동을 통한 메일 수신 및 발신’이 63.2%로 높았다. 메신저나 에스엔에스를 통한 업무처리 및 지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47.9%였다. 업무시간 이외 또는 휴일에 직장과 관련된 업무를 하기 위해 스마트기기를 사용하라는 권유를 받은 경험이 있는 근로자 비율은 30%에 달했다.

스마트기기를 사용해 일을 하다 보니 ‘업무시간이 증가했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감소했다’는 응답의 2배였다. 연구를 진행한 이경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스마트기기의 업무 활용도가 높을수록, 특히 업무시간 외에 스마트기기를 업무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부정적 효과가 배가되는 경향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연장·휴일근로에 대해선 통상임금의 1.5배가 지급된다. 그렇다면 카톡 노동을 반영한 실시간 근로시간은 어디까지 봐야 할까? 정신적 스트레스 같은 산업보건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아이티 강국’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노동환경은 급변하고 있지만, ‘메신저·에스엔에스와 노동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거의 전무한 상태다. 과학기술을 제도나 문화, 인식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보상의 문제에 앞서 ‘카톡 노동’을 ‘인권의 문제’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개별 기업에서 단체협약을 맺고 보상하는 문제는 사후조치일 뿐 중요한 것은 ‘카톡 노동’이 인권 문제라는 공감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업무시간 외 지시가 정당한 것인지, 아니라면 사회가 이를 어떻게 줄여갈 것인지 정부 차원의 논의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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